'자유의 소리'가 지난 9일 오후 5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실과 희망의 소리를 전하는 자유의 방송을 지금부터 시작하겠다"라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시작된 대북 방송은 약 2시간가량 국제 정세와 대한민국의 발전상, 기상 정보,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 가수들의 노래로 꾸며졌다.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울려 퍼진 건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정부는 북한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지 살포에 반발해 오물풍선을 무더기로 살포하자 이에 맞대응 카드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해 왔다. 이를 의식한 듯 오물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던 북이 지난 9일 오물풍선 살포를 재개하자 예고한 대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이다. 

휴전선 인근의 북한 군인뿐 아니라 30km 밖의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들리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 일각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고작 확성기 방송 트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것. 도리어 북한을 자극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접경지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이 매우 강력한 대북심리전 수단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체제가 최근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보다 효과적인 게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 당국이 한국 소식과 한류 콘텐츠가 북에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주민을 통제하고 있으나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이걸 얼마든지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대북 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지난 2015년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확성기를 정조준해 포사격을 가했다. 그러고 나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목적으로 먼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4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나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도 확성기 방송 중단이 핵심 내용으로 들어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만큼 북한의 대응에 따라 더 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 대화 채널이 끊기고 9.19 군사합의마저 무력화된 상황에서 북의 무력 도발이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우선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부터 점검하는 등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북한 김여정은 지난 9일 담화문에서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북한의 무더기 오물풍선 재개는 남측이 대북 전단지를 보낸 데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책임이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궁극적으로 대북 전단지 살포를 중단시키라는 엄포인 듯한데 그 안에 숨은 함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북 전단지 살포는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지난 정부가 21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후 대북 전단지 살포를 강제로 중단시켰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를 '표현의 자유'를 위반해 위헌으로 판단함으로써 법으로 강제할 근거가 사라졌다. 

탈북민 단체 등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 당국이 직접 살포하는 오물풍선은 성격 차제부터 완전히 다르다. 내용물에 있어서도 한국의 발전상과 유명 가수의 노래가 담긴 USB, 성경, 달러 등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정보와 물품을 담은 것과 담배꽁초, 오물, 휴지 등 쓰레기로 가득 채운 오물풍선과는 비교가 안 된다. 

문제는 이런 북한의 대응 뒤에 남남갈등과 국론 분열이란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왜 괜히 북한을 건드려서 부스럼을 내냐는 불만이 정치권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게 하는 동시에 대북 전단지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해 스스로 중단하게 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기까지 우리 사회를 극도로 혼란케 하려는 게 저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선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오물풍선으로 맞대응하는 걸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먼저 구실을 만들었다는 식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건 결과적으로 북한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일부 언론, 국민 모두 직시해야 할 게 있다. 북한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전에도 군사위성 발사와 탄도미사일 발사, GPS 교란 등 복합적인 도발을 상시로 감행해 온 집단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밥 먹듯이 위반하고 핵무기 개발까지 마친 저들이 대북 전단에 이토록 과잉 반응하는 이유가 뭐겠나. 자유를 억압·통제당한 북한 주민의 의식이 깨어나 자기들 체제에 위협이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런 집단을 상대로 우리끼리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북의 도발을 정당화시킬 뿐이다. 

일각에선 '힘에 의한 평화'가 능사가 아니라며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대화를 주문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난 정부가 대화를 위해 저자세로 임한 결과가 북한의 변화 대신 핵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에서 조건 없는 대화가 능사는 아니다.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입으로 하는 평화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북한 주민에게 자유의 소식을 알리는 전단 살포와 대북방송 또한 우리가 평화를 지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음을 선포하는 메시지이자 북한의 무분별한 도발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란 점에서 우리 안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