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시계획
여호수아 20장 1절-9절
살고 싶은 집을 짓거나 구입할 때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르다. 어떤 분들은 부엌이 크고 넓어야 한다. 주로 주부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거실 공간이 넓고 편해야 한다. 사람들과 교제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방과 욕실이 크고 좋아야 한다.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은 사람들이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히 땅을 정복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도시 계획이다. 우상 숭배로 더럽혀진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주시켜서 거룩한 땅으로 바꾸려고 하는 프로젝트다. 궁극적인 목표는 제사장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적어도 700년 이전에 아브라함과 함께 계획하셨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15:16) 이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내용이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않아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데, 그들의 죄악이 차면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네 후손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불러 오겠다는 말이다. 그 동안 네 후손은 애굽으로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결국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찼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 심으신 것이다. “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18:24-25) 여기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좀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래전부터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다고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계획은 아담의 타락 이후부터 시작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낼 때 이미 포로에게 돌아올 것을 계획하고 계셨다. 이 모든 계획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다 실행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와 복 주시는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원리를 따라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 형통,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무조건 복을 달라고 구한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적인 원리를 알고 그대로 살아갈 때 복을 누리게 된다. 그 중요한 원리가 오늘 말씀에 나온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제사장 나라로 만들려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도시 계획을 세우실 때 가장 중요한 컨셉이 있었다. 바로 도피성이다. 2절과 3절을 보자.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도피성은 부지중에(실수로) 사람들을 죽인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성읍이다.
7절과 8절에 보면 도피성들의 위치가 나온다.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도피성 사진) 요단강 동쪽에 3개(바산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와 요단강 서쪽에 3개(갈릴리 게세스, 세겜, 헤브론)를 합쳐서 모두 6개이다.
이 여섯개 도시는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되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북쪽, 중앙, 남쪽으로 나누어서 지역 안배를 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 가장 잘 보이는 곳,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도피성을 세웠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대로로 닦아서 가다가 길을 잃는 것을 방지했다. 가나안 땅 가장 구석에서도 30마일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도피성을 정했다. 하루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도망가다가 중간에 붙잡혀서 죽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도피성 6개가 모두 레위인들에게 속한 성읍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48개의 성읍을 레위인들에게 주셨다.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민35:6) 12개 지파가 각각 중요한 4개 성읍씩 레위인들에게 내어 준 것이다.(48개 성읍 사진) 48개 성읍에서 뭘하는가?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결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가 전체 땅을 지배하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레위인의 48개 성읍이 차로 보면 엔진이고,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보면 OS(Operating System)이다. 레위인들의 48개 성읍이 가나안 땅을 전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레위인 48개 성읍을 중심으로 12지파를 배치했다. 엔진이 건강하게 잘 돌아가야 차가 잘 작동하듯이 48개 성읍에서 레위인들이 제사를 집례하고, 절기를 지키고, 말씀으로 판결하는 일을 충실하게 해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레위인들이 이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12개 지파가 십일조를 잘 드리고, 제사와 절기를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영적인 원리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이 원리를 따라서 살았다.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창26:24-25) 제단을 쌓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에도 이 원리를 따랐다.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이 원리 속에서 교회 중심, 말씀 중심, 목회자 중심이라는 원리가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도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피성이다. 3절에 보면 도피성을 세운 이유가 나온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도망쳐와서 보호를 받는 곳이다. 여기서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잘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잘 해보려고 했는데 능력이 없어서, 힘이 약해서, 결심이 약해서 무너진 인생을 말한다. 실패한 인생이다. 상처입은 인생이다. 눌린 인생이다. 쫓기는 인생이다. 이런 사람들이 도망쳐 와서 보호를 받는 곳이 바로 도피성이다.
하나님은 겉으로는 강력하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땅을 정복하라. 율법을 지켜라. 게으르지 말아라. 내 명령을 지키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단호하게 보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도시를 계획하실 때 율법으로 정죄하고 심판하는 살벌한 도시가 아니라 은혜와 용서가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아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면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지도 너무 잘알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살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그런데 사람이 잘 살고 싶다고 마음 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계속해서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한다. 잘해보려고 하는데도 실수하고, 실패하고, 유혹에 넘어진다. 이것이 인간의 약함이다. 그럼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벌하고, 저주를 퍼붓고,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도피성을 만들어서 살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앞에서는 강력하고 무섭게 말씀하시면서도 뒤로는 도피성을 두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겉으로만 알면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진짜로 알면 사랑의 하나님이다. 겉바속촉(It’s crispy on the outside, soft on the inside). 하나님이 만드시는 제사장 나라의 가장 중심에 은혜를 상징하는 도피성을 두게 하셨다. 사람들이 들어가면 죽는 가장 거룩하고 무서운 장소인 지성소의 가장 중심에는 은혜를 주시는 시은소(시은좌)가 자리하고 있다. 율법으로 하나님을 대하면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가장 따뜻하고, 사랑많은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도피성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6절을 보자.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은 목숨을 건지지만 집으로 돌아갈 순 없다. 도피성을 나가면 죽게 된다. 도피성을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경우 밖에 없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도피성은 단순히 허물을 덮어주고, 실수를 용서해 주는 곳이 아니었다. 도피성은 그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곳이었다. 용서만이 목적이라면 재판을 해서 고이성이 없었다는 것만 밝혀지면 내보내주면 된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사람은 용서해 주는 것만으로 회복이 안된다. 잠시 잠깐 감사할 뿐 다시 옛날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회복된 삶을 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광야 40년, 사사기 400년이 수도 없이 보여준 사실이다. 사람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회복된 삶을 살 영적인 힘이 길러져야 한다.
도피성에 있으면서 이들이 어떻게 회복이 되었을까? 우리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나갈 수 없다는 도피성의 법에 주목해 봐야 한다. 왜 다른 방법은 절대로 안되고 오직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만 가능하다고 했을까? 대제사장의 죽음을 대속 죽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NAC) 예수님이 대 제사장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다 뒤짚어 쓰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우리의 죄의 문제가 다 해결된는 말이다. 우리의 죄는 다른 것으로는 안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만 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인간의 죄와 죽음을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이 없다. 사탄의 권세와 저주와 재앙을 이길 방법이 없다. 지옥의 권세를 이길 힘이 없다. 돈으로 해결 안된다. 종교적인 수련으로 해결 안된다. 오직 십자가의 피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오직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구약시대에 이걸 알려주는 것이 바로 동물의 피제사였다.
도피성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성읍이다. 제사를 드리는 성소가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있다. 매일 동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나가면 죽으니까 나가지도 못하고 도피성에서 매일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지금 말하면 매일 복음을 듣고, 예배 드리고, 말씀읽고, 기도한다. 회복이 안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이다.
사람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른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에서 나온다. 뜨겁게 찬양하고,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면 치료가 일어난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면 치료가 일어난다. 참된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치료된다. 이것이 예배의 비밀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고 영적인 예배가 살아만 있다면 그곳에 죄와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고 반드시 치료와 회복이 일어난다. 그 예배를 드리는 곳이 교회다. 오늘날 교회가 도피성이다.
하나님이 도시 계획을 이렇게 세웠다면 사탄은 어디를 공격하겠는가? 바로 이 도피성을 무너지게 한다. 예배가 무너지게 한다. 복음이 선포되지 못하게 한다.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흔들고 공격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사탄이 가장 먼저 공격한 것이 도피성과 예배성소였다. 우상 숭배로 제사를 무너뜨렸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제단이 우상숭배로 대치되고, 제사장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제단을 버리고 도망가버렸다. 이 모든 것이 돈과 물질을 중심에 둔 결과이다.
오늘날도 돈과 물질 때문에 예배가 뒤로 밀리게 한다. 세상의 문화가 들어와서 참된 복음, 바른 말씀을 밀려내려고 하다. 예배가 하나님이 중심이 아나라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이런 예배 속에는 치료와 회복의 능력이 없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탄의 영적인 공격을 이길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진정한 도피성을 잃어가고 있다. 예배를 드리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외도하고, 술로 마음을 달래고, 마약, 도박에서 위로를 얻고 도피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는 파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물을 가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다.(렘2:13) 우리 교회가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 그 해답은 예수가 그리스도됨을 선포하는 복음 외에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달라스에 두신 이유는 달라스의 도피성이 되어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예배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 하나님께 듣는 예배를 드려라.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라. 여러분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해답을 찾으라. 그리고 여러분이 해답을 주는 도피성이 되라. 가정에서, 친구들 속에서, 직장 안에서, 사업의 현장에서 도피성이 되어서 영혼을 살리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