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교적 사실 근거로 우리
역사의 발전적 국면 조명 나서
진보 취향 영화들, 허위 사실로
보수 진영 정치인 절대악 묘사
<건국전쟁>, 피해의식 대신
변화와 개척 기독교 방식 다뤄 

◈이승만 재평가: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실적 역사기술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 특히 그의 정치적 업적을 기리는 작품으로, 전반적으로 보수우파 진영의 역사인식과 국가관을 반영하고 있다. 제작비 3억 원의 저예산 독립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흥행세를 보이는 작품이다.

손익분기점은 약 12억 원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2월 중순경 제작비 20배에 근접한 5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개봉된 독립영화들 가운데 최고 성적을 기록한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얼마 전까지 극장가에서 큰 흥행 성공을 거뒀던 <서울의 봄>과 마찬가지로, <건국전쟁>에 대한 평가 역시 정치 성향을 따라 극적으로 나뉘는 모습을 보인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인, 평론가, 그리고 기독교계 인사들은 좌편향된 역사교과서나 미디어가 보여주지 못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공로를 올바르게 조명하는 작품이라 호평하고 있다. 

반면 진보 정치인들과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우편향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개봉된 작품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런 반응은 예상 외의 측면이 있다. <건국전쟁> 흥행세가 과연 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큼 대단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서울의 봄>을 비롯해 그동안 1천 만 관객을 넘긴 여러 편의 진보 취향 영화들(<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에 비한다면, <건국전쟁>의 흥행성적은 독립영화 치고는 선전했지만 전체적인 국내 미디어 시장 규모로 봤을 때 그 영향력이나 족적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관람 관객층도 주로 40-50대가 주를 이룬다. <서울의 봄>이 청년 세대에까지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하면, <건국전쟁>은 여러 모로 대중의 호응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영화 변호인
▲진보좌파 진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치 이력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 일화를 다룬 영화 <변호인>. 진보 취향의 대표적인 흥행 성공작 가운데 하나로, 1천 만 관객을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최근 영화계에서 이슈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진보 이념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국내 영화·미디어 업계에서 드물게 보수 성향 역사관을 표방하고, 현재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기 위해 고투를 벌였던 한 거물 정치인의 업적을 비교적 사실에 근접하게 조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덕영 감독 본인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국내 미디어 업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단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름 유의미한 흥행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 진보 진영 인사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이 불쾌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보수 진영도 미디어를 이용한 프로파간다에 조금씩 능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미디어를 통한 역사 왜곡과 정치 선동은 전통적으로 공산·좌파·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의 전매특허와 같은 것이었다.

공산주의 정치 이념이 태동하던 시기인 19세기 후반, 이 급진적 이념의 선구자들은 제대로 된 정치적 기반을 갖지 못했다. 당시 이 새로운 정치 이념의 지지자들을 살펴보면, 소수의 혁명적 지식인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도시빈민, 저임금 노동자, 빈민 소작농들이었다. 이들은 숫자는 많았지만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주도권을 갖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승만 재조명: 기독교 교육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피해의식을 극복한 정치인의 일생

그러나 문화계는 사정이 달랐다. 문화계는 기본적으로 특정 문화 조류를 향유하는 이들의 숫자가 중요하다. 국가 지도층이나 부유층이 향유하는 문화가 서민들에게 열화된 형태로 전파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서민, 빈민들이 널리 향유하는 문화가 고급화·전문화돼 사회 상층부로 전파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경향은 특히 '대중문화'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된 근대 이후 서구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문화발전 메커니즘이다.

국민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와 농촌의 서민과 빈민들이 공산주의에 열광하면서, 문화계는 자연스럽게 진보좌파 이념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이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좌우 이념갈등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 현상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 수장을 맡고 있는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미디어 업계에서는 진보좌파 이념이 뚜렷한 강세를 보인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런 미디어 업계의 전통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작품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환호를 받고 진보 진영에서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선전선동 전략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은 다름아니라 역시 미디어를 통한 변증과 사실적시라는 것을 이 영화는 입증하고 있다.

<건국전쟁>의 내용 가운데는 분명 비판받을 만한 소지가 다분한 요소들도 있다. 무엇보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역사를 서술하다 보니, 그가 범한 실책들은 대부분 가려지고 있다. 이 점은 적절한 역사인식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영화가 조명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경제적·사상적 업적이 결코 허위로 조작된 것들은 아니다. 

건국전쟁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큰 흥행 성공을 거둔 대부분의 진보 진영 취향 영화보다 뛰어나다. 우파나 좌파 미디어 제작자 모두 역사적 인물을 극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보호, 전파하고 그에 따른 실질적 삶의 개선을 가져온 이들을 어느 정도 미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콘텐츠의 상업적 성공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건국전쟁>이 그동안 제작된 많은 진보 진영 취향 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은 적어도 허위사실에 기대 극의 서사를 구성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서울의 봄>을 예로 들면, 진보 취향 미디어 콘텐츠는 그들의 이념을 거부하는 이들을 절대악으로 꾸며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등에서 묘사된 보수 정치인이나 공무원, 군인들은 묘사된 내용 자체만 보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분류될 만하다. 이처럼 진보 취향의 미디어 콘텐츠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거부하고 배격했던 역사적 인물에게 나쁜 방향으로 허구적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일이 일반적으로 정당화되는 데는 해당 정치 진영 인사들의 피해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반면 <건국전쟁>은 이런 이념적 피해의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이는 그 내용이 이승만 대통령의 진취적인 삶의 방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확립한 이승만 대통령은 원래 조선 왕실 후손이자 유서깊은 사대부 가문 출신이었지만, 젊은 시절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 선교사를 통해 자유와 인권, 그리고 개화의 가치를 배웠다. 또 온갖 과오로 얼룩진 과거가 아니라 변화된 미래를 향해 삶을 변화시키고 개척해 나가는 기독교적 삶의 방식을 배웠다. 

이승만
▲젊은 시절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 (왼쪽부터) 한성감옥 사형수 시절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학사과정 시절.

기독교적 실존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죄악과 과오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숭고한 계명을 받들어 선을 실천하는 실제적인 변화이다. 이런 기독교적 사고의 전환은 청년 이승만에게 조선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기득권과 외세에 대한 굳건한 피해의식, 이른바 '한(恨)의 정서'라는 말로 포장된 피해의식을 극복할 힘을 주었다. 

이승만 역시 깊은 피해의식에 잠식돼 세상을 증오할 만한 이유가 여럿 있었다. 그는 독립협회 활동으로 체포돼 한성감옥에서 사형수로 5년 이상 수감된 적 있고, 일제의 탄압으로 기약없는 망명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김일성의 야욕으로 자신이 책임진 국가의 분단과 참혹한 침략전쟁을 경험해야 했다. 게다가 맹방인 미국 트루먼·아이젠하워 정부는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계몽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이승만을 경계하고 견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과거의 원한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계몽과 삶의 개선을 위해 분골쇄신하도록 한 것은 배재학당에서 받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 미국 대학에서 받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적 훈련, 그리고 일제에 대한 독립투쟁 과정에서 깊어진 한국인들을 향한 동료의식이었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처럼 삶을 복고적이다 못해 미개한 지경까지 끌고 내려가던 조선의 구습에서 벗어나, 당시로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발전된 인권 및 정치의식을 배워, 이제 막 건국한 대한민국을 전쟁과 빈곤과 전근대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게 만든 탁월한 정치지도자의 밝은 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당연히도 여기에 과거 억압이나 침탈에 대한 피해의식과 울분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우리 한국인들의 삶이 나아지고 변화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지 확인시켜 주면서, 향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이로써 <건국전쟁>은 피해의식과 허위사실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비교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기술하고 있고, 이 점이 우파와 좌파 진영 모두에서 서로 다른 의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계속> 

제17회 교회법 세미나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