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 성공회의 중심지인 캔터베리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에서 90년대 팝송을 감상하며 춤추는 ‘소리없는 디스코’(silent disco)가 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 2천여 명이 반대 청원을 제출했지만, 몇 주 뒤에는 다른 대성당에서도 유사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소리없는 디스코는 지난 8일과 9일 밤에 열렸으며, 대성당 웹사이트에 게시된 광고에는 “다른 어느 대성당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역사적인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90년대 사일런트 디스코가 처음으로 찾아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행사는 DJ들이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엔싱크(Nsync), 에미넴(Eminem), 스파이스 걸스(The Spice Girls),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오아시스(Oasis), 린킨 파크(Linkin Park) 등과 같은 90년대 팝 가수들의 음악을 틀면, 사람들이 무선 헤드폰을 착용한 채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추는 파티이다.
대성당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9일 밤 행사 티켓은 1인당 25파운드(약 4만 2천원)에 매진되었다. 영국 프리미어지에 따르면, 이 행사는 대성당 내에서 술이 제공되었고 3천 명 이상이 참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성당의 소리없는 디스코에 반대하는 ‘체인지.org’ 청원은 2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참했으며, 그중 1600여 명이 캔터베리 행사가 열리기 전에 서명을 완료했다. 또한 행사 첫날인 8일에는 대성당 외부에서 디스코 행사에 반대하는 철야 기도회가 열렸다.
청원서는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님, 모든 사람들이 사일런트 디스코를 좋아하지만, 그곳은 나이트클럽이 아닌 캔터베리 대성당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교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 토마스 베켓(Saint Thomas Becket)의 순교지이자 유해가 안치된 곳이며, 왕, 왕세자 및 주교들의 유해를 보관한 곳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수 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의 목적지이며, 우리의 가장 위대한 초기 문학 작품에 대한 영감을 준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셀 수 없이 많은 기도와 성찬의 중심지인 하나님의 집”이라며 “당신이 관리하는 이 성지를 더럽히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16일에는 헤리퍼드 대성당(Hereford Cathedral)에서 80년대 팝송을 테마로 하는 소리없는 디스코가 열릴 예정이다. 청원서에는 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할 예정인 12개의 대성당이 명시되어 있다.
이번 청원을 주도한 카히탄 스코브론스키(Cajetan Skowronski)는 프리미어지와의 인터뷰에서 “친애하는 영국 성공회 주임 사제분들, 이 디스코를 중단하고 다시 대성당을 기도의 집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며 “대성당의 수호자들이 완전히 세속적인 디스코를 초대하며, 자신의 집 안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코브론스키는 “이는 수 세기 동안 하나님의 집이자 성지로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피땀과 눈물을 쏟은 기독교인들의 유산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캔터베리 주임 사제인 데이비드 몬테이스(David Monteith) 신부는 비판에 대해 “대성당은 기독교 예배와 선교의 중심지로서의 주된 초점 이외에도 훨씬 더 넓은 방식으로 지역사회 생활의 일부였다”고 반박했다.
몬테이스 신부는 프리미어지에 보낸 성명에서 “사람들이 캔터베리 대성당에 주로 예배자로 참여하는지, 관람객 또는 클래식 콘서트, 조명 및 음향 설치, 공예 워크숍 참석자인지에 관계없이, 그들이 이 놀라운 장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을 항상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 세기에 걸쳐 대성당에는 다양한 종류의 춤이 있었으며, 성경은 다윗 왕이 주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춤추는 은사를 기억할 만한 사례로 기록하고 있다”며 “세속적이고 신성한 것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90년대를 주제로 한 우리의 소리없는 디스코는 대성당에 적합하고 이를 존중할 것이다. 이는 명백히 본당에서 벌이는 광란의 파티가 아니”라며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결코 춤과 팝 음악이 대성당 안에서 자리할 자격이 있다고 동의하지 않을 것임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콘월 트루로 시에 위치한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Truro Cathedral)도 3년 연속으로 신년 맞이 가면무도회를 개최해 반발을 샀다. 이 행사에는 주류, 라이브 음악, DJ 및 소리없는 디스코까지 전부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