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 주일, 남가주사랑의교회(노창수 목사)는 최정권 목사(한국성서대학교 신임 총장)를 초청해 주일예배를 드렸다. 최정권 목사는 사무엘상 2:12-21를 본문으로 한, <예배 하나님의 신비>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예배를 요구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고등학교 과외선생님이 전해주신 구절 요한일서 5:11-12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며, 설교를 시작했다.
“과외선생님이, 요한일서 5:11-12를 펼쳐 보라고 하시더니, 나에게 ‘네 안에 아들이 있니?’라고 물으셨다. 선생님을 따라서 기도했다.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내 속에 들어오셔서 제 죄를 씻어주시고 저의 구세주가 되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생각했다. 이런 다고 내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겠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들어오셨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이 믿어졌다. 두번째 제 안에 일어난 일은 예배가 좋아졌다.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예배가 제 속에 삶에 기준이 되었다. 오늘은 그 예배 이야기이다.”
그는 사무엘서에는 두 가지 주제, 즉 왕권과 제사직을 다루고 있다며 첫번째 주제인, ‘왕권’에 대해 사무엘서의 저자는 어떻게 다윗과 사울을 대조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사무엘서는 두 가지 주제를 갖고 시작한다.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왕을 세운다.선지자의 집에서 선지자와 밥을 먹었던 사울, 새벽에 동틀 때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울이 밤에 무당과 밥을 먹는다. ‘밖에 나갔더니 밤이었더라.’ 마치 갸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갔더니 밤이었다고 기록한 것 처럼, 사울의 왕권이 새벽에 시작했다가 이방 종교의 무당의 종교에서 끝나는 영적 어두움을 얘기했다.”
“다윗의 왕권은 어떠한가? 밧세바 사건이후 꺾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압살롬에게 쫓겨나고 왕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무엘상은 인간 왕권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역대기로 가면서 모든 왕, 인간 지도자는 실패한다. 그러면서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사무엘서 저자의 흐름이다. 사무엘서 첫번재 흐름은 왕권이다. 두번째 흐름은 제사직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직으로 세운다.”
그는 출애굽기 28:1을 근거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제일 우선. 제사장은 예배가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예배가 없으면 교회 존재 이유가 없다. 예배를 위해 제사장을 세웠다”고 강조하며, 삼상 2:12으로 초점을 옮겼다.
“이런 시각으로 삼상 2:12을 보면 놀라운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즉, 제사장 두 사람이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담임 목사가 예수를 안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사를 인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목사가 예수를 안 믿는가? 이민 초기에 미국 장로교 목사님과 교재했다. 그분이 은퇴를 하시며 제 사무실에 와서 영어를 가르쳐주셨다. 프린스턴을 나오셨고 미국 법무관까지 한 분이셨다. 그분이 저와 얘기를 나누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는데, 후임 목사님의 논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후임 목사의 논문의 주제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분께 물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아도 담임 목사를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저에게 더 놀라운 말을 하셨다. 자신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롬 9:10을 근거로, 이런 목회자 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그 교회에는 구원이 일어날 수 없다며, 엘리의 두 아들들의 영적 무지를 지적했다.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를 몰랐다.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을까? 그들은 목사의 아들들이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신앙은 집단적이거나 가족적이 아니다.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아버지가 목사라고 저절로 구원 받는 것 아니다. 유아세례를 받았어도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며, 그럴 때 교회와 예배의 존재의 의미가 왜곡되어 버린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엘리의 아들들이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을까? 사무엘서의 저자는 홉니와 비느하스 이야기를 하는데, 관용어처럼 앞에 붙는 말이 있다. 엘리의 아들들이라는 말이다. 1장 1절부터 4장까지 엘리의 아들들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된 것은 육의 힘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힘으로 제사장은 되었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몰랐다.”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그들은 예배를 멸시했다. 제사장이 가질 수 있는 것은 화목제물의 가슴살과 뒷다리이다. 그것도 화제로 기름을 태운 다음에 화목제물을 가질 수 있다. 제물이 그들의 이익의 수단이 되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존재할 뿐 예배나 안식일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엘리의 아들들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되물으며, “예배는 하나님의 법대로 드려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편의에 의해 예배가 여흥이 되어 가고 있다”며 이것이 “사무엘서 저자가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정권 목사는 아브라함 J.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유대교 신학자)이 안식일의 개념을 차용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예배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있다가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식일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의 사건 속에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가? 엘리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닌가? 사무엘의 이야기는 엘리의 아들들과 다르게 부르심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자고 있는 사무엘을 부르신다. 처음에는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인줄 모른다. 예배 속에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진다. 예배의 위대함은 말씀에 있다. 하나님이 내 상황을 아시고 내 영혼을 아신다. 그 음성을 예배 속에서 듣는다. 엘리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부르심이 없다. 더 분명한 사실은, 사무엘의 출생, 이스라엘의 왕권을 여는 사무엘의 시작은 하나님의 집 실로에서 시작되었다.하나님이 한나를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아오신다.(요한복음 4: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