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에 시작된 사순절은 한동안 건전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면서 사순절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사순절은 부활절 세례준비 기간이었지만 목적도 변질되기 시작했다. 10세기 이후 로마교회는 사순절을 금식 기간으로 규정했고, 점차 금욕과 고행의 계절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중세 사순절은 지나치게 복잡한 규율과 엄격한 수칙으로 본래 정신은 완전히 잃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로 잘 알려진 테일러 마샬 (Taylor Marshall)은 “중세의 사순절은 이슬람의 라마단보다 더 혹독했다(Medival Lent was harder than Islamic Ramadan).”라고 전한다. 그는 사순절의 기간(라마단 30일 정도)도 길었고, 금식과 금욕의 내용도 훨씬 복잡하고 가혹했다고 밝힌다.
사순절 기간에 금식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정한 ‘피가 섞인 고기를 식탁에 올리지 말라’는 규정이다. 이후 달걀과 치즈 등이 추가로 금지되었고, 점점 까다로운 규정이 추가되었다.
양태자 박사는 게오르크 스텐겔을 인용하면서 사순절 기간에 달걀을 금지한 것에 얽힌 얘기를 전한다. 사순절에 달걀을 금했기에 사순절이 끝나면 집마다 달걀이 넘쳐났고, 쌓인 달걀을 처치하기 위해 수도원이나 교회에 달걀로 소작료를 내거나 기부했고 이 달걀들로 교회는 부활절에 채색 달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부활절 계란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한다.
중세교회가 사순절에 육식은 금하고 생선을 허락하자 수도사들이 이 규칙을 변칙적으로 적용한 일화가 많다. 독일 바이에른에 한 수도원에서 사순절 기간에 오리 고기를 먹었다. 그들은 오리가 물에 살기 때문에 어류로 분류할 수 있다는 참신한(?) 해석으로 오리 고기를 합법적(?)으로 먹었다.
다른 수도원에서는 능청스러운 해석으로 육식을 했다. 그들은 어류와 조류가 같은 종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창세기 1장 20절(“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다녀라”)을 인용하면서 같은 날 창조된 물고기와 새들은 같은 종족이라며 사순절에 새 고기를 먹었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사순절 사건이 있다. 1522년 사순절에 취리히 인쇄업자 프로샤우어의 집에서 인쇄 노동자들이 성경출판 기념 파티를 하면서 소시지를 먹는 ‘사건’이 있었다. 프로샤우어는 "금식 기간에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라는 규정에 근거해 소시지를 내놓았다. 로마교회는 이것을 문제 삼아 그들을 처벌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츠빙글리는 1522년 3월 23일 주일설교에 사순절 금식 규정은 교회가 정한 인간의 규범일 뿐이며 성경의 교훈은 가르침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순절에 육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츠빙글리의 이 설교는 이후에 ‘자유로운 음식 선택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이 설교가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츠빙글리 종교개혁은 사순절의 비판으로 출발했다. 그는 로마교회가 법과 규정을 남발하여 가련한 성도들의 양심을 옥죄는 죄를 범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순절 금식 규정을 어길 때 처벌하는 것을 하나님 말씀(성경)이 아닌 인간이 만든 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천주교의 악습을 비판한 츠빙글리 의견을 반영해 사순절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