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7:1-2)
어제 소개한 이광수의 교회에 대한 비판의 글을 같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선 이광수의 교회 비판의 글은 1917년에 나온 것으로, 지금부터 107년 전으로, 한 세기가 지난 때의 일임을 유념하면서 그의 비판을 들어 봅시다.
한 세기가 지났다는 말은 이광수가 그 때, 한국 교회를 비판한 글은 오늘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난 시대의 교회 비판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100년 전의 한국교회와 오늘의 한국교회는 180도 다른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100년 전 이광수의 교회 비판이 오늘 교회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100년 전의 한국 교회의 모습이나, 현재의 교회 모습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100년 전 이광수의 한국 비판을 다시 한 번 들어 봅시다.
첫째, 금일 야소교회는 계급적이다. 동양의 계급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극복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근본정신에 반하여 교회가 오히려 계급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목사, 장로들이 평신도들 위에 군림함으로써 교회가 계급적 단체로 전락하여 만인평등사상을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역작용을 하고 있다.
이 비판에 대해 오늘 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교회는 전혀 계급적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 장로들이 과연 평신도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동일하다고 생각할까요? 장로들은 안수 집사 보다 높고, 권사들은 집사보다 높다는 개념이 없을까요? 100년 지난 한국 교회는 여전히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교회지상주의이다. 교회 지상주의는 교회만 제일이라고 하여 비기독교인을 모두 악인이요 신용 없는 이방인으로 본다. 또한 교회지상주의는 기독교 교리 외의 모든 세상 학문을 천히 여긴다. 목사, 전도사의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임에도 교회는 교회제일주의로 나가는 것이다.
이 두 번 째 비판은 Yes and No입니다. 우선 현재 교회는 불신자를 악인이요, 신용 없는 이방인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 전도사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상주의로 나가는 일에서는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교회는 여전히 목사, 전도사의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고, 세상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 일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셋째, 교역자들의 무식함이다. 목사, 전도사는 최하의 사람도 접하지만 최고의 사람들도 접해야 됨으로 성경이나 몇 번 읽는 것으로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세상의 여러 학문에 상당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교역자 교육에 있어서 보통학교 졸업 정도도 못 되는, 교육이 부족한 자에게 1년에 3개월을 교육하여 5년간, 즉 15개월 동안 신,구약성경을 1, 2차 독과(讀過:읽으면)하면 목사의 자격을 주어 만인의 정신을 지도하는 자가 되니 그들이 무식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 번째 지적은 오늘 교회에는 맞지 않습니다. 요즘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 신학대학원에서 3년 동안 교육 시키고, 교역학석사(M.Div.:Master of Divinity) 학위를 줍니다. 졸업한 후, 각 교회에서 적어도 2년간 전도사(강도사) 사역을 한 후, 청빙하는 교회가 있을 때, 목사 안수를 합니다.
따라서 이광수가 100년 전에, 보통학교(초등학교) 졸업도 못한 사람들을 15개월 동안 신구약 성경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신학교육을 다 한 것으로 여기고, 안수했던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이 세 번 째 지적은 오늘 교회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넷째, 미신적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민에게 아프리카의 미개한 민족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채택하여 우리에게는 심오한 원리를 가르치지 않고 고래의 미신을 이용하여 천당지옥설과 사후부활, 기도 만능설 같은 것으로 몽매한 민중을 죄악에서 구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선교사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처럼 보인 것이 분하다.
이 네 번 째 지적 즉 조선 민족을 선교사들이 미개인 취급을 하면서, 천당 지옥설, 사후 부활, 기도 만능설 같은 것을 가르쳤다는 지적은 오늘 교회에는 모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요즘도 “기도 하면 만사형통한다.”라는 말을 하는 목사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해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기독교의 진수를 가르치고, 기도만 하면 만사 형통하다는 식의 가르침은 삼가야 합니다.
100년 전 이광수가 지적한 한국 교회의 약점을 오늘 교회가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광수의 지적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를 경청하면서, 교회가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시정해야 할 것은 시정하면서, 올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 더욱 기도하며 노력해야겠습니다.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