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7:1-2)
초기 한국 교회 선교 현장을 살펴본 해외의 여러 교계 인사들은 단시일 내에 급속하게 성장한 우리 교회에 대해 듣기 민망할 정도의 찬사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전후한 한국 교회의 성장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할 만큼 비약적 성장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부터는 일제의 탄압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던 교회가, 이제 우리 민족 안에서 나오는 비판의 소리에 또다시 자성의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1910년대 말에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는 교회를 향해 매서운 필봉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1917년 3월 「청춘」(靑春) 제11호에 기고한 ‘금일 조선야소교의 결점’이라는 글에서 당시 교회에 대해 몇 가지 항목으로 비판하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금일 야소교회는 계급적이다. 동양의 계급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극복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근본정신에 반하여 교회가 오히려 계급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목사, 장로들이 평신도들 위에 군림함으로써 교회가 계급적 단체로 전락하여 만인평등사상을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역작용을 하고 있다.
둘째, 교회지상주의이다. 교회 지상주의는 교회만 제일이라고 하여 비기독교인을 모두 악인이요 신용 없는 이방인으로 본다. 또한 교회지상주의는 기독교 교리 외의 모든 세상 학문을 천히 여긴다. 목사, 전도사의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임에도 교회는 교회제일주의로 나가는 것이다.
셋째, 교역자들의 무식함이다. 목사, 전도사는 최하의 사람도 접하지만 최고의 사람들도 접해야 됨으로 성경이나 몇 번 읽는 것으로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세상의 여러 학문에 상당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교역자 교육에 있어서 보통학교 졸업 정도도 못 되는, 교육이 부족한 자에게 1년에 3개월을 교육하여 5년간, 즉 15개월 동안 신,구약성경을 1, 2차 독과(讀過:읽으면)하면 목사의 자격을 주어 만인의 정신을 지도하는 자가 되니 그들이 무식할 것은 당연한 것이다.
넷째, 미신적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민에게 아프리카의 미개한 민족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채택하여 우리에게는 심오한 원리를 가르치지 않고 고래의 미신을 이용하여 천당지옥설과 사후부활, 기도 만능설 같은 것으로 몽매한 민중을 죄악에서 구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선교사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처럼 보인 것이 분하다.
이광수는 결론적으로, “현시 조선 교회는 전제적, 계급적이요, 야소교의 근본 특징인 자유, 평등의 사상을 몰각하였으며 종교의 신앙을 인생의 전체로 여겨 신자, 비신자의 구별을 선인, 악인의 구별같이 하고……교역자가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수한 교인을 미신으로 이끌어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여 미신적 신앙을 고집하여 문명적 종교의 사명을 감당치 못한다.”고 질타하였습니다.
또한 이광수는 1918년 9월 「매일신보」에 다시 교회에 대한 비판을 가했는데, 그 내용은 30년의 역사와 30만의 교도를 가진 조선 야소교회에서 아직 신앙고백이나 교리해석 한 권을 [생]산(産)하지 못했다고 꼬집으면서 자기 교회 역사책 한 권도 저술치 못한 교회를 비난하였습니다.
이광수가 기독교에 입교했거나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천명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산학교 교사로 있을 때, 기독교 정신으로 이 학교를 건립하고 지도했던 남강 이승훈 장로와 교장 조만식 장로 같은 이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그의 문학세계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영향 받은 바 큰 것을 그의 작품, 「무정」, 「재생」, 「흙」, 「유정」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기독교에 깊은 이해를 가졌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교회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시대의 지성인이 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항상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하면서 자성의 자세를 가져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과 관련해서 내일 한 번 더 쓰겠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