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누군가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비웃을 것입니다. 당장 누군가를 힘들게 하며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비난을 받을 때,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내 자존심을 구겨가면서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챔버스는 단호하게 주님과의 관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의 최선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깊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 ‘나에게 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능력이 있나’를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이 다리를 만든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우리 영혼을 침체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김병삼 –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집
능력의 문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초자연적 연결점이다. 문이 열릴 때는 언제, 어디서나 그곳과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강한 능력의 파도가 부어진다. 바로 그때 하늘이 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라. 그분이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오시도록 내어 드리라. 이것이 바로 문이 열리는 길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의 능력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문을 연다. 이러한 능력을 받는 것을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성령의 채우심 없이는 절대 실행될 수 없다. 우리의 육적인 재능이 아닌 오직 천국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이끌림 받을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과 동일한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완전히 씻김 받은 존재로 보신다.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다른 이들은 전혀 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조슈아 밀즈 – 능력의 문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에 의해 자유를 얻으며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인간은 타인과 사물을 섬기는 자유로 확장시켜야 한다. 즉 봉사의 실행인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봉사는 능력에 따른 업적에 해당한다. 하지만 루터에게서 봉사는 이기적인 측면을 넘어서 타인의, 기독교적 용어로 말한다면 이웃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업적이다. 타인을 향한 봉사는 이웃들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인간들의 자유는 이웃들과 연대하면서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봉사로 표출되어야 한다. 봉사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김성수 외 6명 – 능력주의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