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시우스는 목회도 탁월하게 잘 했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주목을 받는 중요한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는 당시 사회에서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기득권 세력을 향해 강력한 돌직구를 날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암브로시우스의 또 다른 걸작이 <토빗 이야기>입니다. <토빗 이야기> <엘리야와 금식론> <나봇 이야기>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책망하고 경고했던 암브로시우스의 3대 문헌입니다. <나봇 이야기>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자의 포도밭을 빼앗았던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했다면, <토빗 이야기>는 부자들의 고리대금 하는 악을 경고합니다.
'토빗'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생소합니다. <토빗>이 구약 외경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천주교나 정교회에서는 토빗을 구약성경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토빗>을 구약성경에 포함하려 했고, 고대 교회 많은 교부와 학자들이 자신들의 글에서 <토빗>을 성경으로 인용합니다.
고대 교회의 중요한 문서들이 <토빗>을 인용합니다. 거의 신약성경으로 인정되었던 <디다케/Didache)에서 <토빗>을 인용합니다. 폴리갑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토빗>을 인용하고,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 요한 크리소스톰, 오리겐, 그리고 어거스틴 등이 토빗을 하나님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한국에서는 신교와 구교가 연합으로 편낸 공동번역 성경에 <토빗>이 있습니다. <토빗>의 시대 배경은 BC 8-7세기 경이고, 저작 시기는 BC 200년경입니다. 폴란드 워미아와 마주리 대학교 미하우 보이치에호프키 교수는 <토빗>이 구약성경 느헤미야와 분량과 내용(교훈과 기도)이 비슷하다고 주장합니다.
토빗은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대하여 선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했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안나와 결혼하여 아들 토비야를 낳았습니다. 그 가족은 어느 날 포로가 되어 고향 갈릴리를 떠나 앗수르 니느웨로 끌려갑니다. 그곳에서 임금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땅에서 출세합니다. 그는 메디에의 가바엘에게 은 열 달란트를 맡겨 놓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시체 매장 금지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묻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토빗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이웃 유대인들을 묻어 주었고, 결국 들통나 도피하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게 됩니다. 어느 날 자는 동안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마저 잃게 됩니다.
메디아에 사는 그의 친족 사라는 악귀에 사로잡혀 불행합니다. 결혼만 하면 남편들이 죽습니다.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일곱 남자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와 토빗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 라파엘을 보내십니다. 라파엘을 통해 두 가정의 문제를 풀어 주신 것입니다.
토빗은 아들 토비야에게 20년 전 메디아의 가바엘에게 맡긴 은화 열 달란트를 찾아오라고 명합니다. 메디아로 가는 토비야가 동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위장한 천사 라파엘이었습니다. 라파엘은 토비야와 사라 두 사람이 결혼하게 합니다. 결혼식 기간에 둘은 여행 중에 잡은 물고기의 간과 염통을 향불에 태워 마귀를 물리친 뒤 기도드립니다. 토비야는 사라와 함께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토비야는 물고기 쓸개를 아버지의 눈에 발라 시력을 되찾아 줍니다. 토빗은 갖고 온 재산의 절반을 라파엘에게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때 라파엘은 자신이 천사임을 밝히고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토빗은 시력을 되찾은 뒤에도 선행을 실천하며 112살까지 살다가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죽기 전 아들 토비야를 불러 메디아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자 토비야는 아내와 함께 메디아로 돌아가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살다가 117살에 죽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토빗>을 중심으로 <토빗 이야기>를 썼습니다. <토빗 이야기>는 24장의 설교입니다. 주로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경고와 책망입니다. 대략 정리하면, 1장에서는 토빗의 삶을 소개하고, 2장에서 15장까지는 부자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의 악을 고발합니다. 돈놀이는 우상숭배'라고 규정짓습니다. 16장부터 24장까지는 선한 삶과 가난에 대해 변증을 합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주로 부자들을 경고하지만, 돈을 빌리는 사람들도 경고합니다. 그는 돈을 빌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규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빌립니다.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흉작 등 불가피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경우는 탐욕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돈을 빌리기도 합니다. 탐욕만큼 나쁜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의 한도를 넘는 소비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채무자가 되어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는 악한 채권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자를 탐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경우는 사랑과 나눔의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채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환경에 맞게 빚을 지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빚을 져야 한다면 온갖 힘을 다해 빚을 갚고 그 올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재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구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확실하게 상급을 쌓는 방법이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방법입니다. 토빗은 돈을 빌려주었지만, 이자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토빗 이야기>를 복음과 연결하며 정리합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사랑의 채무자라고 주장합니다. 사랑의 채무자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제와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암브로시우스는 토빗을 빗대어 그리스도인들의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