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절 기간 중 여섯 번째 주일이며, 부활주일을 한주 앞둔 종료 주일(Palm Sunday)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부터 부활주일까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만 왕의 왕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날 성경을 보면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면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려 주일(Palm Sunday)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메시아로 개선하는 왕처럼 오시는 예수를 환영하는 뜻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데서 유래되는데 혹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환영했다고 해서 호산나 주일(Domonica Hosanna)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종료 주일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겸손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은 나귀새끼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탔던 말과 비교해 볼 때 지극이 볼품이 없어 보이는 짐승이었는데 왜 예수님은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말을 탄 사람은 늠름해 보일 수 있지만 나귀를 탄 사람은 늠름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시대에 나귀는 그저 가난한 촌에서 물건을 대신 지워서 나르는 짐승이었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나귀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짐을 실어 나르거나, 이동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짐승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왕들은 위엄과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말을 타곤 했지 나귀를 타는 경우는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람들에게 키도 크고 화려하고 늠름해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택하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겸손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무엇보다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 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는 이와 같은 모습을 기록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이 땅을 정복하러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그리고 이 땅에 필요한 평화의 왕으로 우리를 위해 고난을 짊어지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사 복음서를 보아도 예수님의 고난이 무려 25장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마지막 한주간 당하신 고난에 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고난을 자청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성을 향해 입성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 때문에 크나 큰 고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번민”과 “감당키 힘든 고문” 을 겪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과 실수를 친히 짊어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4-5)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을 묵상하며 십자가 은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