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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연결 또는 충돌하는 위치
쇼츠 영상처럼 일반 독자들 쉽게
교리 놓고 싸움 벌이며 정통 추구

비잔티움의 역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 최하늘 역 | 더숲 | 410쪽 | 22,000원

"동방 제국은 지리와 역사 측면에서 서방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끼어 양쪽 모두와 적대 관계에 놓였고, 자신을 계승해 줄 민족 국가 하나 남기지 못했다. 다시 말해 비잔티움 제국을 옹호해 줄 그 어떤 민족주의적 역사학도 존재하지 않았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방대하지만 불편한 투사체로만 남았다."

'천년왕국'이 실제로 존재했다. '동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으로 알려진 비잔티움(Byzantium) 제국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한 395년, 서로마와 동서로 완전히 분할된 비잔티움은 서로마 멸망 후에도 1천여 년 간 지금의 튀르키예(터키)와 그리스,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1453년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최종 멸망하기까지 천 년 넘게 이 지역에서 중세(Medieval times) 거의 전체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 교과서를 비롯한 우리의 관심은 주로 지금의 프랑스와 영국, 플랑드르와 이베리아, 독일 등 서유럽에 있기에, 당시 여러 민족들이 할거하는 등 복잡했던 서유럽 정세와 달리 '터줏대감'이자 최대 제국이던 비잔티움에 대해서는 놓치기 일쑤였다.

더구나 교회사에 있어서도 당시 가톨릭 교황이 로마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존재했고, 교황은 이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정교회'와 교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다소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십자군이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기도 했기에, 그러한 차원에서 비잔티움이 아닌 '동로마 제국'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더구나 '성상 파괴 운동' 등이 다소 부정적 이미지를 풍기기도 한다.

터키 성 소피아 성당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아야 소피아 성당. ⓒ픽사베이

책 <비잔티움의 역사>는 동서양을 연결 또는 동서양이 충돌하는 위치에서 기나긴 시간 자리를 지켰던 비잔티움 제국을 중심에 두고, 최신 연구 성과까지 반영해 역동적이고 밀도 있게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저는 블룸스버리 출판사의 '쇼트 히스토리(Short Histories)' 시리즈로, 일반 독자들도 읽기 쉽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1천 년 역사를 마치 '쇼츠(shorts) 영상'처럼 보여준다는 건 장단점이 있다. 기나긴 역사를 중심 사건들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맥을 잡을 수 있지만, 비잔티움 구석구석을 세세하게 파악하긴 힘들다. 비잔티움 역사가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보니, 정말 '쇼츠 영상'처럼 이름 모를 새로운 황제와 주요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고 훅 지나가버리는 느낌도 있다. 시대별 판도를 쉽게 보여줄 지도나 도표가 적은 점도 아쉽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이 책을 통해 비잔티움 역사를 들여다볼 이유는 충분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오랜 박해를 끝낸 콘스탄티누스 1세가(이미 313년 그의 밀라노 칙령 전인 311년 갈레리우스가 박해를 공식적으로 끝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점인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수도를 세운, 당대 최초이자 최대의 '그리스도교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파 문제 등 교리 문제가 국가적 회의를 통해 논의됐으며, 교리 해석을 놓고 외부와의 전쟁 및 내부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비잔티움 국가 체제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교'가 있었다. 물론 정치적 야심과 고려도 있겠지만 황제들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종'임을 내세웠고, 반란과 침략의 명분도 '신앙'이었다.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성당 황제의 문(Imperial Gate)에 그려진 성상 모자이크. ⓒ위키

지엽적인 면에서 우리와 신앙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추구한 것은 정통(Orthodox)이었다. 최근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성당이 이 시대와 비잔티움을 가장 잘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무엇보다 비잔티움 제국이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거세게 밀고 올라온 이슬람 세력이 서유럽마저 삼켰다면, 이슬람은 지금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튀르키예 대지진 등으로 요즘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땅이기도 하다.

책은 성상 파괴 운동과 로마 교회와의 갈등 등도 각각의 정치적 입장과 함께 짧고 굵게 풀어내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당대의 경제와 사회, 문화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 비잔티움 제국이 르네상스와 현대 구상 미술에 미친 영향까지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 비잔티움 제국은 유토피아적 노아의 방주처럼 교회와 제국, 사회 구조의 오래된 형태를 보존한 존재이다. 의고주의와 형식주의를 걷어 버리고 나면, 비잔티움 제국은 끝없이 변화하고 적응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비잔티움 역사 지도 세력
▲전성기 비잔티움 지도.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