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장신대 조철민 교수
(Photo : 미주장신대 조철민 교수)

일의 또 다른 의미, 고역

(신 26: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신 26:6) “But the Egyptians mistreated us and made us suffer, putting us to hard labor.”

1. 일의 또 다른 의미
히브리어 일하다(עָבַד : 아바드)는 섬기다(serve) 혹은 예배하다(worship)로 번역된다. 우리의 일이 예배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하다(עָבַד : 아바드)가 명사형 한 형태인 ‘ă·ḇō·ḏāh’ (아보다)로 쓰일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를 위해 일을 해야했을 때 성경은 아바드의 명사형 아보다를 사용하여 고통스러운 ‘노동’(hard labor)으로 번역했다(신 26:6). 우리는 이 대목에서 우리의 일이 고통스러운 ‘고역’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이 인간을 충만케 하는 ‘예배’가 되기도 하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역’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2. 무엇이 노동을 만드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되기도 하고 중노동, 즉 고역이 되기도 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일을 받는 대상, 섬김을 받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무엇인가, 즉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고역일 뿐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성경은 아바드의 또 다른 명사형 ‘e·ḇeḏ’(에베드)를 사용해 '종' 혹은 '노예'로 번역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에베드)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창 9:25)

3. 우리의 퇴근길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일, 즉 예배를 마치고 그들에게 허락된 제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발길은 어떠했을까?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몫으로 받은 제물들을 들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그들의 기쁨 가득한 얼굴을 상상해보라. 우리 비즈니스맨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의 퇴근길은 어떠한가?

육체적 피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성공에 대한 압박감들을 한 가득 안고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하고, 가족들은 비즈니스를 하는 남편과 부모의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있느라 가정이 또하나의 중노동(아보다)의 현장은 되어있지 않는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일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살아갈 때
비즈니스, 예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