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이진천 목사

대한민국에서 군선교의 역사는 1948년 9월 해군창설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무명의 카추샤 병사의 호소문들에 힘입어 1951년 2월7일 군종제도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이 6.25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군종활동은 전쟁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로 한국군의 군종활동은 그 범위와 규모를 넓혀갔으며 군부대는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됐다.

복음이 군부대 안으로 들어오면서 군인교회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라고 불려졌다. 매주 병사들은 교회를 찾았고, 매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은 세례(침례)를 받고 전역하여 세상 밖으로 나갔다. 일명 '초코파이 전도'라고 불릴 만큼 초코파이 하나로 군인교회는 언제나 가득 채워졌고, 이는 한국교회 부흥의 시기와 맞물려 한국교회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선교 현장의 변화를 피할 수 없었는데, 먼저는 불교, 천주교, 원불교가 군선교 현장에 들어오면서 군종 목사의 수가 급감해가고, 종교생활에 대하여 강요할 수 없게 함으로써 위계에 의한 전도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무종교도 종교라는 논리를 앞세워 병사들에게 종교생활을 강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주말 자유로운 외출과 훈련(근무)시간 외에는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둠으로서 더 이상 병사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에 더하여 2019년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는 대한민국의 교회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는 군인교회도 피해갈 수 없었다. 군대는 교회 안에서의 집회를 폐쇄하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였다. 그러나 한 때 병사들이 교회에 오는 것에 장애가 되었던 휴대폰의 사용은 병사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고, 각종 SNS와 영상을 통해 코로나19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소통의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무기(option)가 되어서 앞으로는 더욱 더 활용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겨주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복음화율은 3% 남짓할 정도로 미전도종족 수준이다.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학생 선교단체도 대부분 철수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며,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교회는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상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참담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세대를 포기할 수 없기에 회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군인교회는 군선교 사역자들의 노력으로 열악한 전도환경에도 불구하고 50% 안팎의 청년들이 교회를 찾아 복음을 듣고 있다. 이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한 불씨를 계속 살리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짧은 복무기간(1년6개월)으로 인해 충분한 신앙인으로 성장시키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전역 후 그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줄 교회나 단체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군인교회도 한국교회의 청년복음화와 미래세대를 위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군종목사와 군선교사, 그리고 군선교 단체와 지역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군선교, 또는 청년복음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우며,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청년복음화는 미래세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다. 군종목사는 군부대 안에서 존재감이 점점 무력화되어가고, 군선교사는 자비량 사역을 하고 있으며, 군선교 단체들도 지역교회의 협력을 얻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일부 교회나 단체, 개인에 의해서 군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전도 종족에게 선교하는 심정으로 군선교 관계자와 지역교회가 모두 협력하여 활성화를 이루어야 할 시기이다. 이제 선교의 시선을 군선교에 둘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진천 목사
육군 제3563부대 칠봉교회 담임목사
캄보디아 (비거주)선교사
선교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