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환자에서 생존자로, 이제 생활인으로
미국 유학과 한동대 교수 되기까지 얘기도
작은 희망 가져다주는 힘 얕보지 않았으면
"내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랑하신 이들을 계속 사랑하는 과정이다.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잊힌 사람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권리와 기회를 누리도록 돕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이웃으로, 사람답게 살도록 돕는 일이다."
앞날 창창한 여대생으로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3도 전신화상을 입어 40회 이상 수술을 버텨낸 이지선 씨가 <지선아 사랑해> 이후 10여 년 만에 미국 유학 후 교수(한동대 사회복지학)가 되어 살아가는 일상을 <꽤 괜찮은 해피엔딩>에 담았다.
'지선이'에게 '두 번째 생일(사고)'이 생긴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닌 '사고를 만났지만 잘 헤어진 사람'으로, 스무 해가 지나도 여전히 지겹도록 수술을 받는 '화상 환자'가 아닌, 수술을 받으며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로, 그리고 하루하루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자신을 계속 '다시 쓰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책을 통해 "인생은 (들어갈수록 깜깜해지는) 동굴이 아닌 (언젠가 환한 빛이 기다리는) 터널"이라고, "당신에게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같이 힘내자"고 용기를 건네고 있다.
아무래도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우리보다 적어도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봤을 그녀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행복은 자주 누릴 수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큰 성취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세워놓고 매일의 일상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상황이나 태도를 바꿀 노력도 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사고 후 나는 불행의 조건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주 행복을 느꼈다."
▲책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지선 교수. ⓒ문학동네 |
지선 씨는 사고 후 중환자실에서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시원함에, 발톱에 예쁜 색으로 매니큐어를 바르는 소소함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웬만하면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일에 행복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진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도, 불행도 차단해야 한다고 권한다. "대단한 일을 성취하고 값비싼 것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짧은 행복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길게 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행복해지려면 그런 행복거리를 찾을 때마다 감사와 감탄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외에 그 몸으로 마라톤에 두 번이나 도전한 이야기, 사고 후 20년 만에 '콧물'이 흐르고 밤새 양쪽 코로 숨쉬며 잘 수 있게 돼 기뻐하는 이야기, '마음의 감기'로 처방을 받은 이야기, 자신과 같은 화상 환자나 수용자 자녀를 돕는 이야기 등을 밝고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고 후 중환자실에 있던 그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좋은 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희망이 가져다 주는 힘을 얕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희망에는 사람을 살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진다고 믿고 살아온 덕분에, 지금은 이전보다 더 많은 일에 감사하고 작은 일에 큰 행복을 누리며, 전보다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이지선 교수가 건네는 작은 위로다. 꼭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