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저와 제 아내 사이에는 아들 셋이 있습니다. 큰 애가 95년 생이니 다음 달로 27살이 되고, 둘째는 23살, 그리고 막내가 20살이 됩니다. 1992년 필라델피아로 혼자 유학을 왔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언제 아이들을 셋이나 낳고 키웠는지...생각해보면, 세월은 정말 유수와 같습니다. 한국에 갔을 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아이 셋을 낳으면 둘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능력이 좋거나 정신이 없거나..."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란 말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여자에게 더 부담이 되는 일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여자의 손이 필요할 때가 더 많고, 해산의 고통은 오롯이 여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의 경우는 임신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큰 애는 제왕 절개로 낳아야 했고, 둘째는 유도 분만으로, 그리고 막내는 자연 분만으로 낳았습니다.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왕 절개는 제왕 절개 대로, 유도 분만은 유도 분만 대로, 또 자연 분만도 하늘이 노래져야 끝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큰 아이를 낳을 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첫 경험이었기에 모든 것이 불안했고,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마음 고생이 참 심했습니다. 남들은 두 달에 한 번 가는 병원을 매주 가야 했고, 남들이 한 주에 한 번 갈 땐 두 번씩 가야 했습니다. 처음엔 아이 심장 뛰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나중엔 양수가 부족하다고 해서 결국 5주를 남겨놓고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도중에 아이가 엄마 양수를 삼키는 바람에 2주가 넘도록, 아이 혼자 산소 탱크를 의지한 채 중환자 실에 있어야 했습니다. 밤새 이런 저런 검사를 하면서,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사인을 몇 번이나 해야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 낳자..."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또 아이를 갖자고 했습니다. 아기를 낳는 고통보다 아이를 품에 앉는 기쁨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큰 아이 때처럼 병원엘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양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이번엔 골반이 열리지 않아서 약으로 골반을 열어야 했습니다. 아내는 밤새 끙끙 앓았고, 의사가 말한 진통 주기를 기다리다가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골반도 열리고 모든 준비가 되어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아기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자리를 잘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공급되는 산소의 양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 번만 더 해보고 나오지 않으면 기구를 사용해서 빼내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힘을 줬고 마침내 둘째가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아이 머리에 큰 물 혹이 두 개나 생겼습니다.
둘째도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또 셋째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낳는 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태어난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은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해산하는 여인의 마음을 품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