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서 신앙 나오는 게 아니라, 신앙에서 기적이
인간 이성 초월한 신앙의 신비 독자에게 '보여 주다'
성스러운 복음서, 통속적 신문 비교로 부활 풀어내
'그리스도의 형상' 축 전개 <백치> '글로 쓰인 이콘'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석영중 | 열린책들 | 400쪽
"밑줄과 노트와 손톱 자국으로 나달나달하게 헤어진 채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의 복음서, 그리고 성서에 대한 인용과 암시와 모방으로 가득찬 그의 소설들은 그 어떤 말보다도 웅변적으로 성서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를 입증해 준다. 성서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종교와 윤리의 토대였을 뿐 아니라 소설 창작 과정에서 장르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학적 모델'이었다(79-80쪽)."
2021년은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가장 위대한 기독교 작가 중 한 명인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도스토옙스키 연구자'인 석영중 교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가 200주년을 맞아 총 200개 명장면과 명대사들을 엄선해 추려내고 짤막한 해설을 붙인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명 200>과 함께 펴낸 서적이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이다.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는 저자가 지난 2004년부터 발표했던 도스토옙스키 연구 논문들 중 11편을 엄선해, '종교와 과학의 코드'로 엮어냈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가난한 사람들(이상 열린책들)> 등을 번역했으며, 몇 년 전 작가가 실제로 머무른 공간을 직접 들여다본 탐방기 <매핑 도스토옙스키>도 펴낸 바 있다.
'깊이 읽기'임에도 술술 읽히고, 각 소설에 흩어져 있는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기독교 사상의 진면목을 음미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도스토옙스키는 열렬한 성서 독서가였고 유배지에서 보낸 4년간 성서만 읽고 지냈기에, 기독교를 배제하고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을 정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대표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다. 예수에게서 신성(기적)을 제거한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르낭(E. Renan)의 작품 <예수의 생애>에 단호하게 반대해 그를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을 논박하는 무신론자'로 규정한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기적으로부터 신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기적이 나온다"고 이를 직접 반박하고 있다.
▲열린책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기적은 과학적 사실과 전설 사이에 르낭이 자의적으로 설정해 놓은 뚜렷한 선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으로 전이된다"며 "그 다른 차원에서 기적은 신앙의 신비와 동의어가 되고, 기적의 문제를 이성으로써 논증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기적 대 과학적 사실이라는 르낭 식의 이분법을,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의 주축인 '신앙과 무신론의 기본 대립'으로 흡수시킨다. 르낭이 최고의 가치로 찬양했던 과학적 '사실'은 신앙의 '진실' 앞에서 반쪽의 진실 혹은 거짓으로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7권 '갈릴래아 가나'를 소설 전체에서 가장 본질적인 장이라고 말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의 첫 기적'은 소설 속 무신론자들의 반역에 대한 답이며, 나아가 반역과 의심을 거쳐 장엄한 호산나에 도달한 저자 자신에 대한 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가나에서 행한 기적은 르낭의 논리에 따르면 전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망상이 지어낸 허구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물을 술로 변화시킨 그리스도의 기적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대신, 그것을 알료샤의 꿈 속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신앙의 신비를 독자에게 '보여 준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여기서도, 도스토옙스키는 '논하기보다는 보여 주는 쪽을 택한다.'"
르낭은 부활에 대해서도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전설'로 치부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부활에 대해 '진정한 부활, 개인적인 부활,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부활', 곧 불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 편지에서 썼다. 작가는 이를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부활로 포화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물, 사건, 모티프 등 모든 층위에서 부활의 관념이 재현된다"며 "부활의 개념은 사실상 소설의 다양한 인물과 모티프를 하나로 엮어 주는 고리라 할 수 있는데, 이 고리는 더 나아가 도스토옙스키의 신학과 예술을 유기적으로 통합시켜 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오로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만을 받아들인 역사가 르낭이 사실이 아닌 것은 모두 환상으로 간주했다면, 예술가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사실과 기적 간의 경계를 말소하고 부활의 다층적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정리했다.
이는 비단 르낭을 위시한 19세기 '이성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코로나19 시대 현대인들과 기독교를 '사람의 종교'로 격하시키려는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외치는 작가의 외침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또 움스크 유배를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해방과 일치의 신학'을 찾아낸다. 연구자들이 지적한 소설 속 일관성 결함적 부분들을 '영적 차원'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 준다. 인과율이나 미학적 논리가 아니라 작가의 깊은 영성과 구세사적 초논리가 상식을 압도하고, 결함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흡수해 시간과 신앙과 내러티브가 하나로 융해된다는 것.
잘 알려진 <죄와 벌>은 '정교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부활과 갱생에 관한 이야기'로 정의한다. 작가는 부활의 의미를 형상화하기 위해 가장 성스러운 복음서와 가장 통속적인 신문을 병치시키면서 소설의 내러티브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도록 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신문의 원칙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죽음을 향해 치닫지만, 성서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영혼은 삶으로 이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축으로 전개되는 소설 <백치>에서는 작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도덕성보다 정교회 용어로 '강생(降生)', 즉 기독교적 표현으로 성육신(incarnation)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정교회 특유의 '강생 신학'도 상세히 소개하면서, <백치>를 "글로 쓰인 이콘"이라고 이름 붙인다.
저자는 "강생이 <죄와 벌>에서 관념의 현실화로 변주됐다면, '육화된 말씀'을 주인공으로 하는 두 번째 장편 <백치>에서 그것은 훨씬 직접적이고 복잡하게 소설의 의미론에 관여한다"며 "육을 취한 말씀을 어떻게 소설 속 인물로 형상화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로고스-그리스도와 보이는 인간-그리스도를 어떻게 결합하여 하나의 인물로 재현할 것인가?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백치> 집필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과제"라고 전했다.
기독교 중심으로 소개했지만, 종교와 함께 '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들도 여럿 들어 있다. 이쯤 되면 현기증이 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하루빨리 텍스트로 '영접'하고 싶어진다. 특히 그의 소설들은 오늘날 범람하는 콘텐츠들을 죄다 차단한 채 '기독교 문화'만 접해야 한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보여 줄 전범(典範)이다.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는 작가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이나 읽을 계획인 독자들도, '스포일러'에 대한 염려 없이 읽을 수 있다. 물론 그의 소설들을 읽는 것이 좋지만, 읽지 않고도 '아는 척(?)'이 가능하다. 마치 유튜버 김시선의 리뷰만 보고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