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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희은 | 김영사 | 244쪽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것이 있다. 몸무게가 변한다. 먹는 음식이 변한다.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변하고 만나는 사람이 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의 변화다.

어린 시절 강함의 기준은 단단함이었다. 단단한 것이 강한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강인함,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강함이었다.

사춘기를 거치며 또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할 때는 많이 가진 것이 곧 강함이라 여겼다. 용돈을 많이 가진 친구, 남들이 가지지 못한 최신 신제품을 가진 친구가 곧 강함이었다.

철이 조금 들었을 때는 무소유가 강함이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강함이라 여겼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단단함도 아니고 많이 가지거나 무소유도 아닌 어떤 상황도, 어떤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라 그래', 이 말보다 강한 말이 있을까?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장 담백한 표현이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로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가수, <그러라 그래>의 작가는 양희은이다.

저자는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십 대가 되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말로 표현되지만, 조금 의미를 덧붙여 그 사람의 속사정은 당사자밖에 모른다고 표현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연예인의 이미지가 아닌, 저자가 살아온 치열한 삶의 흔적이 차분히 정리되어 있다. 담담하게 풀어낸 사연은 읽는 사람까지 담담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을 가슴에 품고 산다. 장르는 다양하겠지만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고 가감 없이 펼쳐낸다.

젊은 나이, 석 달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계획이 있을 리 없다.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았다. 기적적으로 시한부 석 달이는 시간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기뻐할 여유는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불어난 집안의 빚 때문에 다시 일터를 전전해야 했다.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능력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부모의 이혼, 새 엄마의 등장,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서른 살에 맞이한 시한부 선고에서 어머니의 치매까지,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모진 바람을 맞으며 그냥 서 있었을 뿐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당시, 저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기도한다. "이 아이만 살려주시면 내 눈을 가져가셔도 좋겠습니다."

쉰 여덟이 된 저자의 기도는 "엄마가 제발 아프지 말고 평안하게 앞으로 10년만 더 사셨으면"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힘든 순간 저자를 지켜준 것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가수의 길을 열어 준 송창식, 어려울 때 돈을 빌려준 신부님,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준 사람들까지, 모두 저자의 인생에 힘이 되었다.

사람의 본질은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만남도 어떤 의미에서는 받아들임이다.

받아들임은 쉽지 않다.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용량이 넘쳐 탈이 나고 만다. 고난도 만남도 그렇다. 잘 받아들이는 것은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결국 썩고 만다. 좋은 것도 이별해야 할 때가 있다. 저자는 많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받아들이는 힘을 얻는다.

"서른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의 장례식. 열 세 살짜리 나는 상주였다. 나는 아버지의 관 위에 가득했던 노란 국화, 흰 국화와 더불어 까만 리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국화는 그 뒤에 이어진 생활의 고달픔과 등식이었다. 그래서 국화는 내게 고달픔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에 국화를 샀다. 국화를 사다니? 내가 다 놀랐다. 세월이 그만큼 많이도 지났구나 싶었다."

인생에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는 채워감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몸 안에 들어온 음식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듯 우리는 다가오는 환경과 만남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고난이 아무리 길어도 인생보다 짧다. 고난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작다. 쉽지 않겠지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누구보다 강한 인생이 된다. 감당할 수 없이 몰려오는 인생의 파도 앞에서 이렇게 외쳐보길 바란다. "그러라 그래"

김현수 목사
행복한나무교회 담임, 저서 <메마른 가지에 꽃이 피듯>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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