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대표하는 어느 미래학자는 깊이 없는 영성이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목사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난다고 지적합니다. 교회는 여기저기 많다는 식입니다. 교회관이 병들었습니다. 일부 교회 장로들은 담임목사를 바지사장 정도로 여기고, 시키는 대로 설교만 잘하고, 나머지 교회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말라고까지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일부 목사는 교회를 자신의 사리사욕에 따라 운영하는 목회자들도 있다고 지적합니다(최윤식, 한국교회 미래지도2, p.10-11)
이러한 혼란과 영적인 방황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화산 폭발처럼 겉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이제 주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교인이 늘었습니다. 목사님께 죄송하다는 전화조차 하지 않는 중직자들도 많아졌습니다. 가장 급증한 교회는 유튜버 교인들입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찬양을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의 헌금을 온라인으로 송금하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천국에 당연히 갈 것이라는 믿음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도 교회의 세속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의 테이블을 예수님은 둘러 엎으셨지만 오늘날에는 이렇게 둘러 엎을 사람이 없습니다. 위로의 메시지는 차고 넘쳐나지만, 생명을 위해 가진 것을 내려놓으라고 외치는 메시지는 사라졌습니다. 교인들의 편리를 위해 얼마든지 예배시간도 장소도 변경하는 교회들은 많아졌지만, 희생과 헌신의 제자도를 가르치는 교회들은 놀란 토끼처럼 도망치고 있습니다.
다윗 시대의 유목민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크리스천은 주식과 유익과 편리를 따라 옮겨다니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신대원에 입학하기 전, 노회고시 면접 시험에서 면접관이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 목사가 되어 사역하는 중, 누군가 와서 10억을 주면서 목회를 그만두고, 기독교 사업을 같이 하자고 권유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소명, 그리고 한 영혼을 구원하고 돌보는 사역보다 더 귀한 것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