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아, 그만 놀고 들어와서 밥 먹어~" 어릴 적, 어둠이 스멀스멀 내릴 때면 저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동네 골목을 쩌렁쩌렁 울리곤 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다방구며 오징어를 하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리면 왜 그것이 그렇게 싫던지... 5분만, 5분만 하다가 결국 어머니께 잡혀 혼쭐이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먹어야 할 시간에,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싫었던 제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은혜가 그 만큼 컸던 것입니다. 밥 먹으라고 부르시던 어머니의 소리가 제게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겠다고 헌신했지만 술담배를 끊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방위 복무를 하는 동안 매일 술을 마셔대서 반쯤 중독이 됐던 터라, 밤마다 허벅지를 찌르며(?) 제 자신과 싸워야 할만큼 유혹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저를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사촌 누나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크게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 누나가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동생을 위해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누나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깨달아져 통곡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소리를 지르셨고, 누나를 통해 우셨고, 말씀을 통해 속삭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제게 생명이 되었습니다.
두꺼비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두꺼비에게 길을 묻다'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두꺼비는 평상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서식지에서 살다가, 봄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산란을 위해 물가로 내려옵니다. 그것도 자신이 태어난 물가로 내려와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무분별한 국토 개발로 인해 수 많은 두꺼비 산란지가 매립되었고 그 나마 남아 있는 산란지 또한, 그 가는 길이 두꺼비들에게는 너무 버거울 정도로 개발이 된 상태라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본능을 좇아 벽을 타고 오르던 두꺼비들의 절박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공사장에 쳐놓은 비닐 벽을 넘기 위해 그 미끄러운 비닐을 수도 없이 타고 오르던 두꺼비들의 모습, 높은 콘크리트 축대를 타고 오르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바들바들 떨면서도 다시 그 벽을 향해 나아가는 '미물' 두꺼비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영원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두꺼비들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께 가장 불순종하는 것이 사람일 것입니다.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가서 죽습니다. 어떻게 그 먼 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먼~ 바다를 헤엄쳐 갑니다. 높은 계곡을 뛰어 올라갑니다. 어떻게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까...싶은 높이의 폭포도 다 올라갑니다. 몸이 헤질 때까지 뛰어 오릅니다. 누가 시켜서 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생명의 법칙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니까? 미물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가고 있다면, 십자가 사랑을 받은 우리는 더욱 기쁨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