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미션대학 박사원장 이병구 박사
(Photo : 기독일보) 그레이스 미션대학 박사원장 이병구 박사

선교 역사학자인 폴 피어슨(Paul Pierson)은 "모든 선교 운동은 핵심 인물(a key leader)이 주도하였다. 선교 운동을 태동한 인물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체험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열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선교 비젼을 나누고 확산시키는 소통 능력을 소유한 선교적 리더들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선교 운동의 핵심 인물 이론이다. 필자는 세계선교 운동의 핵심 인물들을 살펴봄으로서 선교운동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나 자신이 선교적 리더로 준비 되는 도전을 받기를 바란다.

오늘은 인도 선교의 핵심 인물인 슈바르츠(Christian Friedrich Schwartz 1726-1798)선교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슈바르츠는 독일 경건주의의 배경을 가진 할레대학에서 선교 훈련 받고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750년 트랑케바르에 도착하여 1798년 타계하기까지 타밀나두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미 인도 개신교의 최초 선교사인 지겐발크와 플루차우가 트랑케바르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슈바르츠 선교사가 오면서 탄조르 지역까지 확대 되었고 개신교 선교의 기초를 놓았다. 슈바르츠는 순전한 성품과 넓은 마음과 목자 심정을 가진 선교사였다. 현지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50년 동안 한 번도 유럽을 가지 못하고 현지에서 죽었다.

고아원을 세우고 교회를 설립하고 영국군 군종목사(Chaplain)로 활동하였ek. 독일 출신의 루터교 목사가 영국의 선교팀과 함께 선교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슈바르츠는 현지인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사역하였다. 슈바르츠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정부로부터 받은 보수 대부분은 선교 사역을 위해 사용하였고, 실제로 필요한 대부분의 선교비는 자비량으로 조달하였다.

슈바르츠는 1778년 티루네벨리(Tirunelveli)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1785년 교리문답 교사인 사띠아나덴(sattianaden)에게 목사안수를 받게 하여 루터교 목사로 목회를 하게 하였다. 이곳에 세워진 티루네벨리 교회는 남인도 기독교의 중심 교회가 되었고, 남인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필자가 남인도 뱅갈로르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할 때 함께 동역했던 여호수아 목사가 이 지역 출신이었다. 여호수아 목사와 함께 이 지역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동네 이름이 베들레헴, 나사렛, 예루살렘 성경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 20%가 복음화가 되어 있었고, 인도 기독교 단체나 선교 단체 중심인물들이 이 지역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한 사람의 선교사가 헌신하여 25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열매가 있는지를 눈으로 목격하면서 슈바르츠선교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인도 선교하면 윌리암케리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윌리암케리보다 42년 먼저 인도에서 헌신한 선교사가 슈바르츠선교사다. 그는 현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힌두인이나 무슬림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을 때 현지 왕족들이 와서 조문하였다.

그는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의 기초를 놓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덕적인 감화력으로 지역사회와 지도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도시를 기독교 공동체로 변화되도록 했다. 이런 활동으로 선교의 열매를 맺은 슈바르츠는 인도 선교 운동의 핵심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