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한 이해와 지식? 기도는 하는 것
치유 사역자의 하나 버릴 게 없는 기도문
하나님 나라 꿈꾸는 그리스도인들 위하여
기도처럼 쉬운 것이 없고, 기도처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그냥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 하여 기도의 용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역시 기도는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설교를 아무리 잘 해도, 기도에 대해 명확한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그냥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기도는 없으며, 그것들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럼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나요? 저는 기도가 되지 않을 때 찬양을 듣거나, 은혜로운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특히 영성이 깊은 삶을 살아가셨던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고,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기쁨의 노래를 하게 합니다. 블룸하르트의 <저녁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문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언제나 새 힘을 주셔서, 주님의 뜻을 우리 가운데 이루소서. 고난이 켜켜이 쌓여갈 때에도 삶의 용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8월 5일).”
저자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는 독일의 저명한 목사였던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1805-1880)의 아들입니다. 이들 부자의 목회와 사상은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로 알려진 칼 바르트(K.Barth)와 에드워드 트루나이젠(Eduard Thurneysen) 등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저자인 프리드리히 블룸하트와 그의 아버지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에 대해 알아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 요한은 농부이자 목재 계량사인 아버지와 재단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삼촌인 C. G. 블룸하르트는 1804년 바젤 설교회를 창설한 분입니다.
믿음이 뜨거웠던 부모의 영향 때문인지 요한 또한 뜨거운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후에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됩니다. 독일의 신학교는 당시 그 어떤 학교보다 가장 학력이 높았고, 최고의 엘리트들만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주석가인 벵겔에게 영항을 받아 하나님의 섭리 신학을 배웁니다. 24세에 목사가 되어 드루멘즈라는 지역에서 실습 기간을 갖고, 33세에 뫼트링겐 마을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26세에 정신병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던 고트리빈 디투스라는 자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고트리빈의 귀신들림을 살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교단에 보고합니다. 그 책은 <블룸하르트의 투쟁과 소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고트리빈의 친척 중에는 무속인이 있었습니다. 고트리빈은 2년 전에 사망한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품고 나타나는 환상을 봅니다. 갈수룩 심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어느 날 찬송하며 기도하자 고틀리빈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집니다. 요한은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년 동안 치료되지 않았고, 고틀리빈의 자매인 카타리나까지 귀신들림 현상이 일어납니다. 1843년 12월 28일, 고틀리빈과 카타리나의 발작이 극에 달했고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요한은 갑자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귀신아! 이제까지 너의 역사를 수 없이 보았다. 이젠 승리자 예수의 능력을 보게될 것이다. 더러운 귀신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리 물러갈지어다.”
순간 카타리나가 절망적 부르짖음을 내뱉고 그녀의 입에서 “예수는 승리자다”를 연신 외쳤습니다. 결국 아침 8시가 되자 그녀들을 감싸던 어둠이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그 후 고틀리빈과 카타리나는 평생을 요한과 함께 치유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프리드리히 역시 아버지의 사역을 도우며 자라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버지의 사역을 이어 복음 전도자와 성령 치유자로 살아갑니다.
프리드리히가 요한과 달랐던 점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노동자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하고 독일 사민당에 들어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나중에 정치에 환멸을 느껴 다시 목회자로 돌아갑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능력이며 또한 삶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탓에, 그의 신앙은 활동적이며 능동적이었습니다. 삶의 변화를 도외시한 예배와 자기 구원, 내세에만 집중한 신앙을 벗어나 사회에서 변화와 하나님의 정의를 일구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색이 기도문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전능하신 주께서 일어서실 그날까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주의 손에 맡깁니다. 온 세상이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보게 될 그날,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1월 9일).”
“이 땅의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회복되고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영광 받을 그날까지, 우리가 언제나 승리하게 하소서(8월 10일).”
깊은 영성과 신학적 깊이가 더해진 기도문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과 은혜를 줍니다.
이 기도문에는 ‘소망’과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자하는 저자의 바람이 기도문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 만족하게 하시고, 힘겨운 일을 당할 때 인내하게 하소서. 불의가 아무리 횡행하더라도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여전히 다스리심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하소서(9월 7일).”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기도문입니다. 코로나 블루로 답답한 마음을 가진 이들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합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