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서구문명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조화와 충돌로 빚어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바고(Areopagus, 이하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 시민들과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설교학, 선교학 그리고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아레오파고스가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신화입니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기 딸을 납치하려는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이자 포세이돈이 아레스를 고발합니다. 이에 올림포스의 12신들이 표결하여 아레스의 무죄를 선고합니다. 딸을 지키려했던 아버지를 정당방위로 인정했습니다. 이후 이 재판이 열렸던 언덕을 아레오파고스(아레스의 언덕)로 불렀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발전합니다. 아테네 귀족들이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모여 의사를 결정했는데 이 모임이 아레오파고스회의입니다. 또 아레오파고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법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살인이나 살인할 의도로 입힌 상해, 방화, 독살 등과 관련된 재판이 이루어졌다 고합니다. 이 법정은 열린 법정이었습니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가릴 일을 이곳 아레오파고스에 제소를 했고, 그를 위한 재판을 열렸습니다. 검사나 변호사 없이 당사자들이 제소하고 변증한 후 배심원의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399년 5월 칠순의 소크라테스가 아레오파고스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는 "국가의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요 다수결의 폐해 사례로 알려지는 이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언도를 받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억울한 언도를 받지만 탈출이나 거부의 행동 없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독배를 마십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철학자로 인정받는 소크라테스가 주로 활동했던 무대가 아레오파고스였고, 이 아레오파고스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유명한 가난하고 못생긴 사람이었지만 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지혜와 설득력 때문입니다. 나중에 유명한 장군으로 성장한 소크라테스의 제자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눈물이 쏟아지면서 그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고 했고, 아테네에서 추방된 한 젊은이는 소크라테스 가르침이 그리워 여자로 변장해 귀국했답니다. 그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떠난 지 40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에 섭니다. 아테네를 방문한 바울은 소크라테스와 똑 같이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합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경건한 헬라사람들(God-Fearing Greeks)과 변론합니다. 시내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독특한 복음이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에 의해 바울은 아레오파고스에 서서 복음을 전합니다.
1644년 11월 아레오파고스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습니다.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라는 책을 발간했기 때문입니다. 아레오파지티카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차용한 이름입니다. 밀턴은 이 책에서 거짓과 진리가 경쟁한다면 반드시 진리가 승리한다고 말합니다. 밀턴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밀턴은 표현의 자유가 어떤 자유나 인권보다 중요한 천부적 인권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고전입니다.
소크라테스, 바울 그리고 밀턴을 관통하는 아레오파고스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사건은 사도바울의 변증(설교)입니다. 바울의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에 대가들인 아테네 철학자들을 능가했습니다. 바울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성을 관찰하고, 참 종교성을 갖도록 도전합니다.
바울은 이어서(사도행전17:28에서) 아테네 사람들이 애송하는 헬라 시들을 암송하면서 아테네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먼저 아테네의 자랑 에피메니데(Epimenides)의 시구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산다(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를 인용하여 섭리자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그는 또 헬라 시인 아라투스(Aratus)의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We are his offspring)"는 시구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변증합니다.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바울은 아레오파고스에 꼭 맞는 설교를 합니다. 아마 아테네 철학자들과 아테네 시민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으며 혀를 내 둘렀을 것입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아레오파고스 관원 디오누시오 등이 회심합니다. 역사에 길이 빛날 아레오파고스의 바울 설교는 학문, 경험, 열정 그리고 분명한 복음으로 빚어낸 명작입니다.
아레오파고스는 두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첫째 전통은 공정, 인권, 그리고 자유로 세워진 민주 전통입니다. 요즘 표현의 자유 침해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서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와 아레오파고스의 정신을 다시 생각합니다. 두 번째 전통은 열정, 관용 그리고 배려로 접근한 복음의 전통입니다.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직면한 선교의 현장에서 선교사 바울이 보여준 열정, 준비 그리고 인문학적 관용을 다시 맘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