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절대적·신적 권위를 상세하게 변증
성령 사역과 성도들의 성화를 긴밀히 연결
복음전도 책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
정성욱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님께서 최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임스 패커 박사님에 대한 글을 보내 오셨습니다. 정성욱 교수님은 <제임스 패커의 생애>를 쓴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의 제자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17일 영국이 낳은 저명한 개혁주의적 복음주의(Reformed evangelical) 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1926-2020) 박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패커 박사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 최고의 강해 설교자 마틴 로이드존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음주의 리더 존 스토트와 더불어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을 견인해 온 걸출한 신학자였다.
1926년에 태어나 만으로 94세가 되기 직전 소천하기까지, 그는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유산을 남겼다.
필자는 지난 1988년 미국으로 유학왔을 때, 처음으로 그의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1973년 출간. 한국어 번역본은 IVP 2012를 참조)>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영문으로 읽으면서 엄청난 은혜와 깨달음과 통찰을 얻었던 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너무나 감동이 되어,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이후 필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필독서로 추천해 왔으며, 덴버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학생들의 필독서로 지정해 왔다. 그래서 덴버신학대학원의 영어부와 한국어부 공히 조직신학 수강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얻었던 한 가지 중요한 신학적 통찰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Knowing God'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즉 'Knowing about God'을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단순한 명제적, 정보적 지식으로 머리에만 남는 지식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아는 관계적·체험적 지식이며 마음을 변화시키는(transformational) 지식이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임을 패커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점을 밀도있게 논의하였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의 약점들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설교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들(주권, 전능, 전지, 전재, 영원, 거룩, 의, 진노, 사랑, 은혜, 자비 등등),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권능의 사역들에 대해 성심을 다해 선포하는 설교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가 되었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을 논의하면서,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교하도록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의 설교자들이 패커의 충언을 수용하고, 설교의 주제를 다시 하나님으로(Back to God!) 재정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설교자들의 설교가 변화될 때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 축도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외에도 패커는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는 <인간을 아는 지식>, <성령을 아는 지식>, <청교도 인물사>, <제임스 패커의 절대 진리>, <알미니우스주의>, <제임스 패커 기독교 기본진리>, <청교도 사상>, <제임스 패커 거룩의 재발견>, <아름다운 노년>,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 용어 17>, <약함이 길이다>, <제임스 패커의 복음전도란 무엇인가>,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의 인도>, <제임스 패커의 기도>, <복음주의 신앙 선언(공저)>, <칭의의 여러 얼굴(공저)> 등이 있다.
그 저술들을 통해, 패커는 16-17세기 종교개혁과 청교도 신학의 강점들을 현대에 재적용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첫째, 패커는 성경의 절대적, 신적 권위를 변증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그는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였다.
둘째, 패커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작들을 남겼다.
특히 20세기에 흥왕한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과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 성령 본연의 사역을 은사의 나타남으로 왜곡하고 있을 때, 그는 성령 사역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 과정에서 성령과 협력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셋째, 패커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전도의 책임을 감당해야 함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복음전도의 책임을 무시하는 일부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영성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패커는 참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즉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다.
패커가 강조했던 이러한 신학적 통찰들은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시급하게 수용되고 적용돼야 한다.
한국교회는 136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아직도 신학적 표피성과 파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학적 총체성, 통전성, 심오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패커의 신학적 통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패커는 과거의 신학적 유산을 현대에 적용하는 작업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현대 복음주의권의 중요한 논쟁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성경적 관점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특히 바울에 관한 새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에 속한 학자들이 종교개혁 칭의론을 거부하고 수정주의적 주장을 내새웠을 때, 패커는 무게있는 논평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톰 라이트(N. T. Wright) 에 대해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신학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에 대해서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함으로써 전통적인 복음주의권이 새관점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패커의 삶 속에서 한 가지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그가 소위 'ECT 문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ECT 문서란 'Evangelical and Catholic Together(1994)'라는 문서로, 척 콜슨(Charles Colson)이 중심이 되어 21세기를 맞이하는 복음주의와 가톨릭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서 합의한 선언문이었다.
필자는 패커가 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복음주의와 가톨릭의 화해할 수 없는 차이점을 무시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교리적 영역이 아닌 윤리적·문화적 영역에서 복음주의자가 가톨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세계 복음주의 운동은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지난 5월 19일 기독교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소천한지 두 달 만에 날아온 비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거룩한 뜻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고 실현됨을 믿는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패커를 통하여 남겨 주신 중요한 신학적 유산과 통찰을 잘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패커의 저서들이 한국말로 계속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패커의 저서를 탐독하여, 그들의 삶과 사역, 그리고 일터에서 힘 있게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