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화제입니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 영화계의 쾌거다'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장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봉준호 감독을 위시한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수상 후 많은 미국인 친구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습니다. 기분 좋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척박한 한국 영화산업에서 이룬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생충이란 영화에 박수를 보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기독교적 문화관에서 볼 때 아주 불편한 영화입니다. 반기독교적인 설정이나 기독교 폄하 장면은 없었지만 영화의 메시지와 주요 설정이 아주 불편합니다. 영화를 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한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에 시비를 걸지마라!'라는 조언도 듣습니다. 무슨 말인지 압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동성애 영화들이 나올 때 많은 염려와 비판에 '영화는 영화다!'며 비판을 막더니 지금 동성애가 미국 사회를 장악해 버렸습니다. 퀴어 축제가 서울 한복판에서 큰 제약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영향력을 간과한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불편한' 포인트들을 기독교적 문화관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왜 기생으로 보아야 할까요? 영화 기생충은 숙주와 기생충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독처는 비성경적입니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반드시 조화로운 공생을 해야 합니다. 공생의 지혜를 모르면 행복은 고사하고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공생의 지혜가 행복의 지름길이요 생존의 지혜입니다.
모든 고용주와 직원은 공생합니다. 삼성 직원들은 회장과 공생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회장 일가도 직원들과 공생하는 것입니다. 비록 한 가족이 사장의 집에서 기사, 가사도우미, 가정교사로 살아도 그것은 기생이 아닌 공생입니다. 기생은 결국 숙주와 함께 파멸적 결말에 이릅니다. 끊임없이 도발하는 북한과도 공생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공생의 행복을 기생의 불행으로 도색하고 있습니다.
둘째, 왜 방법이 사기와 투쟁일까요? 자신들의 가난을 극복하려고 한 가족이 집단적이고 계획적이고 반복적으로 악을 행합니다. 개인이 사기 칠 수 있습니다. 한 집안이 어쩌다 한번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생충 식구는 집단적, 계획적, 의도적 악행을 반복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 같이 악하고 거짓되게 취직합니다.
비판과 자성이 없는 악행의 반복은 악행의 일반화입니다. 악행의 일반화는 악행의 문화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악행 일반화 메시지를 영화 전체에서 강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악행을 멀리해야 합니다.
셋째, 왜 갈등의 해결이 살인일까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에 갈등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갈등은 친밀함의 부산물입니다. 친밀한 관계에 갈등이 존재합니다.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갈등의 내용과 해결 방식이 중요합니다. 갈등의 내용과 갈등 해결의 양식이 개인과 사회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시시한 문제로 갈등하는 사람은 시시한 사람입니다. 멋지게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입니다. 갈등을 품위 있게 해결하는 고품격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품격 있는 걸작들에는 품격 있는 갈등들이 있습니다. 오랜 감동을 주는 명작들은 갈등의 해결이 근사합니다. 영화 기생충의 갈등은 내용도 결말도 천박하고 추악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갈등의 결말입니다. 사장님의 가슴에 칼을 꽂는 끔찍한 살인으로 갈등이 해결됩니다. 이것이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대단히 위험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 갈등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갈등들은 요셉과 형들과의 갈등, 다윗과 사울의 갈등입니다. 이 갈등들이 감동과 은혜가 있는 것은 해결이 은혜롭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과 영성으로 형들과의 갈등을 해결합니다. 다윗도 믿음과 영성으로 사울과의 갈등을 해결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갈등의 내용도 갈등의 해결책도 불편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제시하는 빈부의 갈등은 건강하지 않고 그 갈등의 해결도 상생이나 공존이 아닌 파국입니다. 영화 기생충이 보여주는 천박한 갈등의 내용과 섬뜩한 갈등의 해법은 극적인 스토리 전개로 관객 끌기와 인기 몰이에는 유익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볼 때 불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생이 아닌 공생을 지향해야합니다. 공생의 현장에서 건강한 갈등을 품어야 합니다. 나아가 갈등 해결도 파국이 아닌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공생과 공존의 지혜를 나누고, 상생과 공존의 길을 보여 주는 것이 우리의 몫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생, 공존, 공생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