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 김유미 역 | 휴 톰슨 그림 | 더스토리 | 672쪽
사람은 겉모습, 하나님은 중심 보셔
코끼리 코 전부라 확신하는 게 편견
여주인공이 미워하는 이유도 '편견'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 겉모습을 본다.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친다는 말이다. 문제는 전부를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놓치는 것이 많으면서도 전부를 보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때 편견이 생긴다.
코끼리를 코만 만져봤다고 편견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 코가 코끼리의 전부라고 확신할 때 편견이 생긴다. 코를 만져 보고 코끼리가 뱀처럼 길다고 말하는 것이 편견이다.
제인 오스틴이 1796년에 쓴 <오만과 편견>에서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남자 주인공인 '피츠윌리엄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미워하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낯선 사람들과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 다아시는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춤도 추지 않는다. 친구인 빙리가 춤을 추라고 권했는데도 거절한다. 이 말을 옆에서 들은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오만한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이야기는 계속 엘리자베스의 편견 속에서 진행된다. 더욱이 위컴이라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다아시에 대한 편견은 더욱 커진다. 다아시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위컴이 다아시를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처음부터 다아시를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이후 위컴의 말만 듣고 다아시를 오만하고 무례하며 악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편견이 점점 깊어진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언니 제인의 사랑을 방해한 사람이 다아시라는 것을 알게 되며서 그에 대한 편견은 분노로 바뀐다. 다아시가 자신의 친구 '빙리'를 '제인'에게서 떼어놓았기 때문이다.
남주인공, 편견 모른 채 여주인공에 청혼
편견의 내용, 진실과 오해 교묘하게 섞여
호감 전해도 나쁜 면만, 주인공 확증편향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된다. 매사 적극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 명랑하며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다아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자베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다아시를 싫어하는지 말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저는 당신이 저에게 청혼을 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알게 된 그 첫 순간부터, 당신의 태도는 내게 거만함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확신을 주었어요. 게다가 당신은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영원히 망쳐버린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위컴에게 당신이 한 일을 들었을 때 이미 당신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위컴에게 주기로 약속한 혜택들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그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고 내쫓았습니다."
다아시는 청혼이 거절당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가 거절의 이유로 말한 빙리와 위컴의 일은 진실과 오해가 교묘하게 섞여 있는 내용이라, 그 자리에서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찾아와 편지 한 장을 내밀고 읽어 줄 것을 당부하며 돌아갔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둘은 여러 번 만났다. 그 때마다 다아시는 그녀를 호감으로 대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좋은 면은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나쁜 이미지만 굳혀갔을 뿐이다. 편견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모습을 '확증편향의 오류'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걸러 버리는 오류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결정을 늦게 하면 우유부단한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결정이 늦으면 신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이유를 충분히 말할 수도 있다. 이미 편견으로 걸러진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이미 다아시의 행동에서 나쁜 점을 기가막히게 찾아내고 수집하고 있었다.
편견 깨진 계기 다아시 장문의 편지
편견 바로잡은 후 다시 회상해 보니
편견 있던 나머지 내용들 다시 보여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깨지게 된 것은 다아시가 주고 간 편지 한 장이다. 다아시가 쓴 장문의 편지에는 빙리와 위컴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왜 친구 빙리를 엘리자베스의 언니에게서 떼어 놓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고, 위컴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했다.
먼저 자신이 아끼는 친구 빙리를 언니 제인에게서 떼어놓은 이유는 빙리가 제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볼 때 친구 빙리는 제인을 뜨겁게 사랑하지만, 정작 제인은 빙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끼는 친구가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떼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엘리자베스는 편지를 읽으면서도 다아시의 말이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한, 언니는 빙리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성적이라서 그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빙리 씨와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아시가 말한 이유는 엘리자베스에게 변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 번째 위컴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충격이었다. 위컴의 말대로 다아시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위컴을 '성직자'로 추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아시 가문은 고위 귀족으로 성직자 추천권이 있었고, 추천은 곧 임명으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다아시가 그 추천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위컴이 다아시를 찾아와 자신은 성직자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직자 추천 대신 많은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어릴 때부터 위컴과 자라온 다아시는,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위컴의 방탕한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성직자가 되지 않겠다는 위컴의 결정과 아버지의 약속도 지킬 수 있는 그 요구를 좋게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3년 후 그 돈을 다 써버린 위컴이 다시 성직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아시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위컴은 어린 다아시의 여동생을 유혹했고, 야반도주를 계획했다. 다아시 동생이 가진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당시 미혼 여성의 야반도주는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로 간주되던 시대다. 다행히 야반도주 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위컴은 쫓겨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두 번째 내용을 읽고, 도저히 거짓이라고 판단할 수 없었다. 다아시 동생과도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다아시 입장에서 동생의 불명예가 될 뻔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까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내용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나니, 나머지 내용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에 친구가 언니 제인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야기 초반에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친구에게 제인이 빙리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의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언니는 그 마음을 좀 더 표현해야 할 거야. 아니면 빙리 씨가 알지 못할테니. 명심해! 다른 사람들은 너만큼 언니의 성격을 아는 것이 아냐. 그래서 지금 모습만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자신이 다아시를 미워하는 동안, 언니 제인이 했던 말도 생각났다. "다아시 씨가 자기 부친의 약속을 그냥 쉽게 저버리는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분명히 어떤 상황이 있었을 거야."
이성적 판단으로 생각했던 모든 행동
실은 모든 게 편견 속에서 이루어졌다
흔들리는 확신일수록 편견의 가능성
사울과 엘리압 평가한 사무엘 '편견'
편지를 다 읽은 엘리자베스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동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동이 편견 속에서 이루어진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는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아시를 첫인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다. 이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일수록 편견일 수도 있다.
다윗의 형 엘리압을 본 사무엘의 심정도 그와 같았다. 지금까지 그가 본 왕은 사울 왕이다. 남들보다 체격이 좋고, 장군감인 사울.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셨지만, 사무엘은 아직도 사울 왕의 환상을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울 왕처럼 체격이 좋은 엘리압을 보고 왕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편견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엘리자베스'처럼 실수하지 않았다. 듣는 귀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No'라고 말씀하시자,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신이 지적인 사람에 속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
자신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면 안돼
완악해지지 않기 위해 듣는 삶 필요
지혜는 들음이다. 듣는 마음이 지혜다. 솔로몬 왕이 일천 희생의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구한 것도 '듣는 마음'이다.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주기적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개인 신앙생활이 중요해졌다. 하나님께 많이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 출발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그러나 그 확신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백퍼센트 확신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밖에 없다.
그해서 더욱 듣는 삶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들을 향해 "완악하다"고 표현한다. 듣지 않음이 완악함이다. 성숙한 성도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에게는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들리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듣는다고 하지만 선명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듣기의 다른 말은 기다림이다. 가장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방법이 기다림이다.
내가 기름부어야 할 사람이 엘리압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기다리면 된다. 기다려야 다윗이 온다. 기다려야 막내 다윗, 어린 다윗이 보인다.
때로는 너무 부지런하게 판단하고 열심히 평가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많다. 그것이 오만이고 그것이 편견이다.
성경에서 기다리지 못해서 실수한 이야기는 많지만, 너무 미루고 기다려서 망친 경우는 회개와 구원 말고는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 나의 죄를 돌이키는 회개.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기다림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기다림이 바른 듣기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우리는 겉모습만 볼 때가 많다. 겉모습조차 다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눈보다 귀로 한다.
내가 본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생각한다. 그나마 들리지 않으면 기다린다. 듣기와 기다림. 이것이 내 속에 있는 오만을 물리치고, 편견을 깰 수 있는 진짜 무기다.
박명수 목사 /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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