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 웅진지식하우스 | 288쪽 | 15,000원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그럼 지금 열심히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말인가?
이 책의 저자 하완은 40세의 나이에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낸다. 붙잡으면 못 이기는 척 다시 남을 생각도 했지만, 사표는 이미 수리된 후였다. 이 한 번의 선택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모두 노력하는데, '노력하지 않는 삶' 쓰다
많은 사람이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노력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다. 성장이다
괴테는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저자는 자신의 인생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한다.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노력하지 않는 삶'에 대한 에세이다.
'노력 무용론'을 말하는 시대다. 많은 사람이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존재한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모두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능 만점 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을 알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성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노력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다. 성장이다. 가수가 되지 못해도, 수능 만점을 받지 못해도 노력 자체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성공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성장을 경험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세상의 성공을 꿈꾸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한 자리씩 차지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힘든 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노력했다. 같이 기도하고 전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은 믿음의 성장을 가지고 왔다.
노력 무용론 아닌 '경쟁 없는 노력' 추구
노력 싫은 이유? 자발적 아닌 강요 때문
노력이 경쟁으로 변할 때, 상처가 된다
자발적인 노력이 될 때 성장을 경험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노력 무용론'을 말하지 않는다. 경쟁이 없는 노력을 말한다. 노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노력이 자발적 결과가 아니라 강요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오늘도 원하지 않는 노력을 강요받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경주'에 참가했었는데 지금은 그 경주를 기권한 기분이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으니 당연히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경주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주의 타이틀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돈 더 많이 버나' 대회?
'누가 먼저 내 집 장만하나' 대회?
'누가 먼저 성공하나' 대회?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향해 달려갈 때 그것은 경쟁이 된다. 경쟁은 승패를 만들어 내고 패자와 승자를 정확히 구분한다. 경쟁에 승자는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명이 웃을 때, 그 한 명을 뺀 나머지는 다 울 수밖에 없다.
노력이 경쟁으로 변할 때 노력은 상처가 된다. 그러나 경쟁이 아닌 자발적인 노력이 될 때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성공은 승자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성장은 패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물론 성공이 조금 더 멋지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은 아름답다. 노력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늘의 노력은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든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된다. 성공이 마침표라면, 성장은 지속 가능성이다.
성공이 마침표라면, 성장은 지속 가능성
지속 가능한 성장 위해, 경쟁 대신 '포기'
포기할 것은 노력이 아닌, 노력의 결과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음 인정을
저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경쟁' 대신 '포기'하라고 말한다. 포기는 노력의 포기가 아니다. 결과의 포기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이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가서다."
저자가 배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노력의 결과다. 우리는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노력하면 다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는데 그곳에 원하는 결과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상상은 이제 공포가 되었다. 그래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포기할 것은 노력이 아니다. 노력의 결과다. 노력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과를 포기하는 것이다.
"괴로움을 줄이는 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포기'한다는 말은 '맡긴다'는 말이다. 노력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 잠언 16장 3절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맡길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장 9절)".
결과는 하나님께, 노력하는 자신에 집중
수수께끼 묘미, 정답이 아닌 '찾는 과정'
믿음은 성공 아닌, 성장을 향해 가는 것
성공은 당장 달콤하지만, 곧 쓴 맛 경험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 집중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은 수수께끼다. 정답이 없다."
수수께끼의 묘미는 정답을 푸는 데 있지 않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재미에 있다.
"수수께끼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 답을 찾는데 집중하느라 문제를 푸는 재미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수수께끼를 꼭 맞춰야 하는 게 아니다. 틀려도 재미있는 게 수수께끼다."
인생의 재미는 성공에 있지 않다. 매일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있다. 믿음은 성공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성장을 향해 가는 것이다.
다윗은 매일 성장하는 삶을 살았다. 실패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지만, 그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그랬고, 범죄한 후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도 그랬다. 그는 성장하는 삶을 살았기에, 노년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너무 일찍 성공을 경험한 솔로몬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우리가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성공의 달콤함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 없는 성공은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독이 된다. 성공하지 못해도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은 지금 당장 달콤하지만, 곧 쓴맛을 경험한다. 성장은 지금은 쓰지만, 곧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달콤함을 좇았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과정을 즐기지 못했다. 얼마나 빨리, 편하게 싸게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냐 하는 경쟁적 관점으로 살았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결과물을 부러워했다."
노력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다. 성공은 결과에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성장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하는 사람이다.
인생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존재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노력할 때 우리는 오늘만큼 더 성장한다. 성장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김현수 목사
행복한나무교회 담임, 저서 <메마른 가지에 꽃이 피듯>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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