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독교 사역자인 팀 켈러(Tim Keller)의 'Prodigal God'이란 책은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에 대한 담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돌아온 탕자'와 함께 '집안의 탕자'를 강조한다. 즉 집 나갔던 둘째아들은 자기원칙과 감각에 살았던 반면, 집안의 맏아들은 도덕주의와 윤리원칙에 따라 살았던 효자였다. 하지만 맏아들은 또 하나의 탕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돌아온 자기 동생을 미워하고 배척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해 오해와 반역의 행동을 한다. 맏아들이 동생을 외면하고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과 열심에 대한 보상심리였다. 이 비유는 당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종교적 열심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남 못지않게 살아가는 모습이 자신에게 있다면 여지없이 그 모습이 그 사람을 올무에 빠뜨리게 할 때가 있다. 가령 부지런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남을 돕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의로 생각한 나머지 타인에 대해 무례하고 비판하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가. 상대방이 볼 때는 그 사람의 의된 행동이 과연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완전을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바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다시말해 율법에 사랑이 겸비된 실천이요, 전인적인 (Holistic)인성을 말한다. 전인적인 인성은 영성을 말함이다. 영성이란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삶 자체를 말한다. 균형있는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격 전체에 균열과 질병이 스며들 것이다. 전인적인 인성이 부족하기에 집안의 탕자가 나오는것이다.
팀 켈러는 그 책에서 교회 생활을 포기한 교인들을 언급하였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에 있는 맏아들의 무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열심이고 기도에 충실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과연 이들 중에는 맏아들은 없는가. 자신의 의에 도취되어 옆 교인들을 무시하고 정죄하며 분열을 획책한다면 집을 나가는 많은 둘째아들을 양산할 것이다.
왜 그런가? 눅15장에 나오는 맏아들의 사고방식처럼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고 인정받으려 하며 자신이 쏟은 물질과 정성 만큼 교회에서 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영적인 맏아들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다. 자신의 권위를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할 뿐이다.
눅15장의 집안의 맏아들과 돌아온 둘째 아들은 하나님 앞에 동일한 탕자이다. 두 아들 모두 하나님께 새로 거듭나야 하며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탕자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격을 온전히 닮지 못한 존재를 말한다. 혹 이것을 잘하는 데 저것을 무시하거나 저것은 잘 갖추었는데 이것을 행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인격 전체가 탕자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
잘못된 종교적 열심에서 탈피하려면, 전인적인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열심과 함께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며 늘 관계회복에 자신의 영성 회복이 있슴을 인지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절망을 가지라. 신앙을 위한 절망은 소망을 가져온다. 자신에 대한 낮춤은 신성한 영적 성숙을 낳는다. 바울처럼, 다윗처럼 자신에 대해 늘 절망하라. 그래야 신앙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은혜가 무엇인지 터득하게 된다. '나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나는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는 사람.' '나는 하나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모르게 된다.'라고 외쳐라. 그러면 성경의 인물처럼 은혜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이웃을 이해하고 겸허하게 될 것이다.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는 인성과 영성이 형성될 것이며 자신의 열심은 자기의 의가 아닌, 곧 사랑으로 인한 기쁨의 감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