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산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의는 10주 동안 1장부터 22장까지 차례로 강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한계시록 서론과 1장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일곱 교회(2-3장),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4-5장), 일곱인 심판(6-7장), 일곱나팔 심판(8-9장), 열린 책과 두 증인(10-11장), 영적 전투(12-14장), 일곱 대접 심판(15-16장), 큰 성 바벨론의 멸망(17-20장),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완성과 결론(21-22장) 등이다.
백 목사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하고 있다. 때문에 세대주의적이나 시한부 종말론적인 '불건전한 요한계시록 해석'에 이미 오염된 이들에게는 해독제로, 앞으로 이단적이거나 불건전한 요한계시록 해석으로 고통받을 사람들에게는 '바른 요한계시록 해석의 백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생아카데미는 요한계시록 강의 외에도 평생 공부하는 목회자를 위한 '평공목 독서클럽',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20년 과정의 '예수대학', 지역 목회자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 아카데미' 등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의 다양한 강의와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백금산 목사는 고려대 교육학과와 총신신대원(M.Div, Th.M)을 졸업하고 예수가족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으며, 부흥과개혁사를 통해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해 많은 영적 거인과 좋은 책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다음은 전편에 이은 백금산 목사와의 요한계시록 관련 인터뷰 내용.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종말론에 관심 일으켜
역사적 전천년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강조
후천년설, 세계 복음화 관심과 노력에 공헌해
무천년설, 영원한 천국과 균형잡힌 역사 관점
-앞서 설명해 주신 네 가지 천년왕국설의 공헌은 무엇인가요.
"네 가지의 천년왕국설은 나름대로 기독교인의 역사관 형성에 있어 공헌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공헌은 종말론 자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입니다. 20세기에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급증은 분명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공헌입니다.
둘째, 역사적 전천년설의 공헌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셋째, 후천년설의 공헌은 세계 복음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입니다.
넷째, 무천년설의 공헌은 영원한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강조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실제적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에 대해 어떻게 믿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천년왕국설에 대한 견해는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 많은 차이를 가져옵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에 따라 우리의 미래관이 달라지고, 미래관의 차이는 오늘의 우리 삶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어떤 잘못된 해석도 결국, 잘못된 해석만큼 기독교인의 잘못된 생활을 초래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어떤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가 더 성경적인 바른 해석인지에 대해 비교 분석하고, 가장 최선의 견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자들의 중요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백금산 목사는 세대주의 벗어나 '무천년설' 입장
후천년설과 전천년설, 천국의 일 너무 일찍 적용
재림 전 시대의 징조에 대한 잘못된 견해 심기도
후천년설은 너무 낙관적, 전천년설 너무 비관적
-목사님은 이 학설들 중 어떤 입장을 취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천년왕국에 대한 제 견해는 '무천년설'입니다. 저는 무천년설을 제외한 후천년설과 전천년설의 공통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후천년설과 전천년설은 영원한 천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영원한 천국이 되기 전의 역사의 한 시점에 너무 일찍 적용해 버립니다.
후천년설은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 역사의 특정 시점에 적용하며, 전천년설은 예수님이 재림하고 난 후에 적용합니다. 즉 후천년설과 전천년설 둘 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무 앞당겨서 적용한다는 점에 동일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천국에서 일어날 일을 앞당겨 적용할 경우, 영원한 천국이 도래하기까지 이 세상에 공존하고 있는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에 대한 균형감각을 상실하여, 일반은총의 가치를 크게 약화시키게 됩니다.
둘째, 후천년설과 전천년설은 예수님의 재림 전 일어날 시대의 징조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게 만듭니다.
후천년설은 예수님이 재림하기까지의 미래에 대해 너무 낙관적 측면만을 강조합니다. 시대의 징조 중 성령의 부으심을 통한 세계 복음화에만 지나친 관심을 가지게 하고, 특히 신법주의적 후천년설의 경우 현재 있는 일반 국가들에 구약의 율법을 적용하려는 기독교 정복주의적 잘못된 '지배신학'을 가지게 만듭니다.
반대로 전천년설은 예수님이 재림하기까지의 미래에 대해 너무 비관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즉 시대의 징조 중 박해, 배교, 적그리스도의 등장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바른 자세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함께 있는 무천년설의 실제적인 관점이어야 합니다. 미래는 한편으로는 세계 복음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교회에 대한 박해와 교회의 배교, 적그리스도의 영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런 실제적 관점은 성경적일 뿐 아니라, 성경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며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실과도 부합합니다."
예수님, 불신자가 영원히 형벌받는 장소로 지옥 언급
지옥 형벌, 죄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지옥은 어둡고 불타는 곳... 몸과 영혼 모두 고통받아
-'지옥이 과연 있느냐', '선하신 하나님이 지옥을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이냐'는 질문이 요즘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변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최후의 심판 다음에 인류가 둘로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구원받은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불 못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성경은 최후의 심판 이후 불신자가 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이야기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불신자가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를 "지옥"이라 부르십니다(마 5:29-30, 23:15, 23:33; 막 9:45-47). 둘째, 예수님은 지옥을 '불'과 연관시켜 "지옥 불", "꺼지지 않는 불", "영원한 불"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셨습니다(마 5:22: 마18:8-9).
셋째, 예수님은 지옥을 "바깥 어두운 곳"이라 표현하시면서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 하셨습니다(마 8:11-12, 25:30). 넷째, 예수님은 죄인들이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때는 세상 끝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40-42, 49-50).
다섯째, 예수님은 지옥을 몸과 영혼이 모두 고통 받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0:28). 여섯째, 예수님은 지옥에는 불신자만 아니라 마귀와 마귀의 부하인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던져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5:41). 일곱째, 예수님은 지옥의 고통은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막 9:43-49).
사도들의 가르침도 모두 지옥이 "불"과 "어둠"으로 상징되며, 지옥에서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에 강조점을 둡니다.
첫째, 지옥의 형벌은 죄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입니다(롬 2:5). 둘째, 지옥은 "맹렬한 불" 또는 "불 못",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불립니다(히 10:27-31; 계 19:20; 계 20:10, 14-15, 21:8). 셋째,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벧후 1:17; 유 13절). 넷째, 지옥의 고통은 영원합니다(살후 1:7-9; 유 7절, 계 14:9-11).
이처럼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한 지옥의 특징에 대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묘사는 "불"과 "어둠"입니다. 지옥은 불타는 곳이며, 어두운 곳입니다. 여기서 이런 "불"과 "어둠"은 문자적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문자적인 불과 문자적인 어둠으로 해석하면 모순과 혼란이 생깁니다. 지옥이 불인 동시에 어둠일 수는 없습니다. 불과 어둠은 불신자들이 영원히 받을 형벌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불과 어둠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지옥은 인간의 몸과 영혼 모두가 고통을 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불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자들의 외적인 고통, 육체에 대한 고통을 강조하는 측면이라면, 어둠은 내적인 고통, 영혼에 대한 고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몸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와 마음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로서 "불"과 "어둠"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이 말해 주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비참함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의식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전통적인 '지옥 교리'를 부인하는 기독교인도 오늘날 많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대한 부인은 두 가지의 부류로 나타납니다. 첫째, 보편 구원론자들입니다. 보편 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구원의 기회를 주어 결국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 소멸론자 또는 조건적 불멸론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신자는 영생을 누리지만(조건적 불멸론),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는 궁극적으로 존재가 없어진다(소멸론)고 생각합니다.
즉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소멸되는 것이 곧 불신자에 대한 형벌이라는 주장입니다.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곧 지옥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인은 지옥에 대한 성경의 계시,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대한 성경 가르침에 대해
1.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고
2. 죗값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기억
3. 영원한 형벌 구해주신 하나님 감사하는 삶
-그렇다면 우리는 지옥에 대한 성경의 이런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하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기간이 몇십 년밖에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는 기간이 영원하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소멸설과 같은 이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와 심판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죄의 크기는 죄를 짓는 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대상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생 세금을 조금씩 떼먹은 죄를 지은 사람과, 한순간 왕을 살해하고 반역한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한순간 왕을 살해한 죄의 크기는 한평생 조금씩 세금을 떼먹은 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죄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왕에 대한 반역죄는 가장 크고 무서운 형벌로 다스려집니다.
그런데 죄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반란입니다. 존재와 지식과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실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하나님을 반역한 죄에 대한 처벌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에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적인 죽음의 가치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인간을 대표해 인간 대신 죽는 것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으로는 처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죗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자인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예수님이 나 대신, 우리를 대표해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가 받을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단번에'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지신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크기는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지옥의 영원한 불, 영원한 어둠의 고통과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주에서 가장 크고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식어지는 것은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형벌과 고통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주의 기초로 종합적 해석방법 교육
연구와 설교 중간 지점에서 계시록 강의
쉽고 명쾌하게 전체 구조와 주제 선명히
-이번에 진행하시는 요한계시록 강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이나 책이나 강의마다 요한계시록의 다양한 해석법에 기초한 각각의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요한계시록 강의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에 있어 상징주의를 기초로 과거주의, 미래주의, 역사주의 장점을 취하는 종합적 해석방법, 즉 구속사적 상징주의 해석 방법과 무천년설에 입각해 요한계시록을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구속사적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이 예언의 절정이자 성경의 결론이라는 관점에서, 요한계시록과 구약의 이사야서,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중요 예언서와 창세기, 출애굽기, 시편 등 구약 성경 전체와 신약 성경과의 유기적 연속성 속에서 해석해 갑니다.
둘째, 이번 요한계시록 강의는 학문적 요한계시록 주석이나 연구서들과 요한계시록 설교의 중간 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강의한다는 것입니다. 즉 요한계시록 전체 본문을 주제별이 아닌 장별, 단락별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가에 중점을 둡니다.
셋째, 이번 요한계시록 강의는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고 명쾌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와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며, 그동안 어렵고 무섭게 여겨졌던 요한계시록을 은혜롭고 감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요한계시록 공부의 유익
1. 성경 전체적인 이해 잘하게 되고
2. 교회와 세상 바라보는 눈 열리고
3. 이단과 사이비 유혹 빠지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든 목회자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필수로 공부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큰 도움을 받습니다.
첫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성경 전체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드라마입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구속 드라마의 서막이며, 요한계시록은 구속 드라마의 종막입니다. 창세기가 성경 전체의 서론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얻게 됩니다.
둘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립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와 세상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고, 가장 선명하게 제시해 줍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서 교회사가 지금처럼 전개되어 온 의미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줍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의 안경을 제공해 줍니다.
셋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교회사를 보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통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잘 가르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이 요한계시록을 더 많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면 정통교회 많은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알지 못하므로 미혹되기 쉽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아는 것은 자신의 바른 신앙을 위해, 또한 앞으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이나 불건전 집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중요한 보호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