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12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담대히 증언한 일부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한 관원과 장로들은 사도들을 불러 놓고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때에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증언하였습니다.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음미하는 가운데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소위 종교라, 또는 종교인이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고요히 생각하여 보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들에게 참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십니다.
우리 동양에는 석가, 공자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인들 또는 종교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대부분의 종교들은 우리가 사는 물질 우주와 창조주 하나님을 분명히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대체로는 소위 범신론이라 하여 물질 우주와 창조주를 구별하지 않고 물질 우주 자체가 무시무종(無始無終)하다고 교훈합니다. 그리하여 소위 '인내천(人乃天)'이라 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이라 하여 '하늘 위에나 하늘 아래나 오직 내가 홀로 높다'고 하는 망상에 잡히는 이들도 적지 아니합니다.
또 이 범신론사상을 근거로 하여 소위 '애니미즘(Animism)' 혹은 '영지주의'라 하여 모든 물체에는 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산에는 산신령, 물에는 물귀신, 심지어 나무, 돌, 짐승, 뱀에게까지 영이 있다고 하여 숭배하는 온갖 미신이 파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재래 한국은 샤머니즘, 무속신앙 등 온갖 미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불멸의 진리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예수님만이, 이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을 지으신 "아버지"라고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또 이 "아버지"의 도덕성, 공의, 자비, 긍휼, 사랑 등 아버지의 성품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회교 같은 종교는 유일신을 강조하고 섬기나 이 신의 도덕성에 대하여 미흡합니다. 듣는 대로 이들이 강제로 선교운동을 할 때에 '코란을 받으라, 그렇지 않으면 칼을 받으라'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모두 신의 도덕성을 바로 깨닫지 못한 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분명히 가르치셨고 기도할 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 이러한 하나님을 그 자신의 생활로써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한번은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와 "주여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할 때에 주님은 곧 대답하시기를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요 14:9) 대답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지의 대주재 하나님을 분명히 가르치시고, 이분의 성품이 어떠하시다는 것도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모습까지 몸소 보여주신 이는 천하 인간에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둘째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선악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양심은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 한 가지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이 양심대로 모두 준행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약점이 있고 고민이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죄인이다"하는 죄의 의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장면을 잠깐 회상하여 보세요.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자에게 던지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아우성치던 그 무리들은 슬며시 다 나가고 말았습니다. 왜요? 그들은 다 죄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하여야 이 죄의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겠습니까? 인류의 종교사를 보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사제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을 보세요. 옛날에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혹은 우슬초로 물을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모두 죄 사함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다른 편으로는 인간의 무서운 죄짐에서 건질 수 있을 것입니까?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사도 베드로의 십자가에 대한 증언입니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친히 들어보세요.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속하신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입니다.
우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더욱이 요새처럼 교통사고, 화재 등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사실 언제 우리의 최후가 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죽기는 싫어합니다. 싫어할 뿐더러 은근히 늘 살기를 원합니다.
사실 영국의 한 시인 테니슨이 지적한 대로 인간의 마음 깊은 속에는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날마다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그래도 인간의 깊은 속 한구석에서는 살기를 원합니다. 영생을 사모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허망한 소원입니까? 이 마음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이 세상 모든 종교인 중에 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신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입니다.
다음 주일은 바로 부활주일입니다. 열두 제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초대 교인들, 아니 과거 2,000년 역사를 통하여 수없는 성도들은 다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왜 수천 년 안식일을 지켜오던 유대 믿는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까? 안식일 첫날은 곧 주일은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까닭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던들 이 지구상에 기독교는 나타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과 나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모든 종교인 중에 죽어 있는 가운데 살아난 이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모든 종교인 중에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최후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합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예수의 남기신, 승천하시기 직전의 말씀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까지 우리 믿는 이들과 같이 계십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 본문을 흔히 아프리카의 유명한 탐험가요 선교사인 리빙스턴의 텍스트(text)라고 합니다. 리빙스턴이 젊은 나이에 흑암대륙 아프리카를 향하여 나아갈 때에 오직 주님의 이 약속을 믿고 나아가 승리하였습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 약속을 믿는 이에게는 반드시 지키십니다.
더 길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인 중에 우리에게 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또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 하나하나와 같이 하시고 도와주시는 이는 천하 인간에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