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에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너무 많아서 함께 거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롯은 그의 눈에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는 선택해서 떠난다.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께서 멸하시기 바로 이전의 모습이었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한 곳이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온전한 믿음으로 걸어 왔던 아브라함과는 달리 자신이 주인이 되고 세상의 재물과 권세욕이 목표였던 롯이 거주한 소돔성은 후에 무참하게 짓밟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지난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 아마도 그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듯 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결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음성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축복은 하늘 위에서 오는 축복이며, 기독교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과 함께 한다면 언제든지 세상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다. 학계와 금융 혹은 비지니스마저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목회와 선교는 어떠하겠는가?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8-20절)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다. 예수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제자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큰 희생과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기 그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주를 따르는 제자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10장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1-12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제가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자, 학식이 뛰어난 자 혹은 재력을 갖춘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거룩한 사명은 비록 가난하고 연약 할지라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는 자들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이 말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공유해야 할 꿈과 비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주님은 축복과 함께 지혜까지도 한없이 부어주실 것이다.
요즘 크리스천들의 귀는 당나귀 보다도 훨씬 크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설교와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하여 그들의 지식 수준도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커다란 귀와 머리만 가졌을 뿐 몸은 움직이지 않아 비만 상태가 된지 오래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이벤트에만 집중할 뿐, 세상으로 나가려는 크리스천이나 교회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 '복음전파'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구원'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스토리에서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전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사역은 지금도 쉬지 않고 진행중이다. 이 사역은 성령님께서 주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역을 우리와 함께 진행시켜 가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요 15:26~27).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러 이방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했던 2천년 전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