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6개월간의 고군분투 끝에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 HR-121은 “150만 코리안 아메리칸(Korean-American)의 정치참여 가능성을 발견케 했다.” 고 평가되고 있다.
애나벨 박(Annabel Park)씨는 위안부 결의안 HR-121을 위한 HR-121 연맹(Coalition)의 전국 코디네이터로 활동, 미 전역에서 전달되는 결의안 통과촉구 서명을 미 의회로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오며, 한인사회 및 미 거주민들의 스피커 역할을 톡톡히 담당해 왔다.
박 씨가 HR-121연맹 전국 코디네이터가 된 동기는 지난 2월 15일, 미주 한인 투표연맹(Korean-American Voter Counseling: KAVC) 김동석 씨의 위안부 관련 연설을 들은 후였다. 박씨는 “우선 스피치에 감명 받았다” 고 했으며, “한편으론 현 150만 코리안 아메리칸(Korean-American)의 정치적 영향력의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시작한 일”이라 전했다.
이번 결의안과 관련된 통과지지 서명운동은 산라파엘 한인장로교회(양진욱 목사)부터 시작돼 베이지역 80개 교회의 동참으로 이어졌고 곧 지역사회에까지 퍼졌다. 교회로부터 서명을 시작한 지 단 3주일 만에 한인 서명자만 만 명을 넘어섰으며 중국, 필리핀인 및 미 거주민 전체에서 총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쾌거를 거두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산라파엘 한인장로교회(양진욱 목사) 성도들과 처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국민 서명운동을 펼친 정대현 박사(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 핵 안전센터 소장 역임)는 “결의안 상정 서명운동은 이 메일을 통해 각 지역으로 통보됐고, 교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증언했다.
‘한인 1세와 2세의 화합’ 도 이끌어 내
한편, 박 씨는 “이번 결의안 통과가 남기는 또 하나의 의미는 ‘한인 1세와 2세의 화합’에 있다” 면서, “문화적 장벽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여겨지는 한인 1세대와 2세대 사이에서도 동일한 지지 의견이 나타남으로 하나됐다”고 했다.
보수적 한인사회, 보수적 현 미 정부라는 선입견으로 서명운동을 통한 결의안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현지인 및 주변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의안 상정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산 사례였다. 동시에, ‘한인 사회의 정치적 발언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 박사와 박 씨는 “그 동안 미 한인사회가 정치에 무관심한 자세를 취해왔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견한 것에 큰 의의를 둔다”고 입을 모은다.
애나벨 박(Annabel Park)씨는 위안부 결의안 HR-121을 위한 HR-121 연맹(Coalition)의 전국 코디네이터로 활동, 미 전역에서 전달되는 결의안 통과촉구 서명을 미 의회로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오며, 한인사회 및 미 거주민들의 스피커 역할을 톡톡히 담당해 왔다.
박 씨가 HR-121연맹 전국 코디네이터가 된 동기는 지난 2월 15일, 미주 한인 투표연맹(Korean-American Voter Counseling: KAVC) 김동석 씨의 위안부 관련 연설을 들은 후였다. 박씨는 “우선 스피치에 감명 받았다” 고 했으며, “한편으론 현 150만 코리안 아메리칸(Korean-American)의 정치적 영향력의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시작한 일”이라 전했다.
이번 결의안과 관련된 통과지지 서명운동은 산라파엘 한인장로교회(양진욱 목사)부터 시작돼 베이지역 80개 교회의 동참으로 이어졌고 곧 지역사회에까지 퍼졌다. 교회로부터 서명을 시작한 지 단 3주일 만에 한인 서명자만 만 명을 넘어섰으며 중국, 필리핀인 및 미 거주민 전체에서 총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쾌거를 거두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산라파엘 한인장로교회(양진욱 목사) 성도들과 처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국민 서명운동을 펼친 정대현 박사(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 핵 안전센터 소장 역임)는 “결의안 상정 서명운동은 이 메일을 통해 각 지역으로 통보됐고, 교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증언했다.
‘한인 1세와 2세의 화합’ 도 이끌어 내
한편, 박 씨는 “이번 결의안 통과가 남기는 또 하나의 의미는 ‘한인 1세와 2세의 화합’에 있다” 면서, “문화적 장벽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여겨지는 한인 1세대와 2세대 사이에서도 동일한 지지 의견이 나타남으로 하나됐다”고 했다.
보수적 한인사회, 보수적 현 미 정부라는 선입견으로 서명운동을 통한 결의안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현지인 및 주변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의안 상정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산 사례였다. 동시에, ‘한인 사회의 정치적 발언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 박사와 박 씨는 “그 동안 미 한인사회가 정치에 무관심한 자세를 취해왔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견한 것에 큰 의의를 둔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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