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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하나님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체감 시간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연령에 따라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곱 살짜리 꼬마가 느끼는 시간과 일흔 넘은 노인이 느끼는 시간은 많이 다르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하루가 어찌나 긴지, 한참 놀다 와도 아직 밥때가 안 됐고, 심심함을 못 이겨 동네를 돌며 친구들을 찾아보고 동네 어귀에서 외출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려 봐도 해는 저물 줄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 넘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어찌나 안 가는지, 빨리 어른이 돼 자유를 찾고만 싶었다. 20대 전후부터 약 10여 년간은 입시, 대학, 알바, 군대, 복학, 취직, 결혼, 출산 등 워낙 할 일이 많아 그랬는지 길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30대가 되자 생활은 훨씬 단조로워졌는데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서른에서 마흔이 된 시간을 생각해 보면 스물에서 서른 된 시간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고, 십 대 때보다는 서너 배 빠른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갈 것이다. 선배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예전에 한 노교수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을 때는 1년 있다 '한~참만에' 또 1년이 가고 그러더니, 50이 넘으니까 '둘, 넷, 여섯, 여덟, 열' 이렇게 가고, 60이 넘으니까 '60, 65, 70' 이렇게 가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쓸데없이 노인들의 하루를 걱정하곤 했었다. 잠도 없어 일찍 일어나는 어르신들은 하루종일 탑골공원 담 밑에 앉아 볕을 쪼이며 시간을 보내는데, '하루가 얼마나 길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나의 걱정은 기우 중의 기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평소 잔소리를 안 하던 사람도 잔소리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하루 해는 길고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빠른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 뭐든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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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뿐 아니라 각자가 느끼는 체감 시간이 있다. 이와 같은 '시간의 상대성' 문제는 일상생활에서도 늘 부딪히는 분쟁의 소지가 된다. 부부가 외출할 때도 남편은 미리 나가서 차에 시동을 걸고 곧 나오겠거니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안 나온다. 아내는 나름 서둘러 화장도 하고 가스불도 끄고 나가 보지만 이미 남편은 씩씩거리고 있는 경우도 시간의 문제이다.

똑같은 10개 질문이지만 남편에게는 하염없이 길고, 아내에게는 짧기만 하다. 만일 나이에 따라 시간을 느끼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은 고민이 한 가지 늘어난 셈이다.

연인들도 마찬가지. 나이가 꽉 찬 노처녀가 군대도 안 간 젊은 연하의 남자와 만났다면..., 또 경제력 있고 사회적으로 이미 자리잡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만났다면, 나이 든 쪽에서는 서둘러 결혼을 하고 싶겠지만 젊은 연인은 급할 것이 없다. 연애를 즐기며 몇 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거나 벌써부터 결혼의 무덤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둥 이야기를 한다면, 그 커플은 오래가기가 어렵다.

물론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또 맞닥뜨린 사안에 따라 체감하는 시간은 또 달라질 것이다. 형무소 독방에 있는 사람의 1시간과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난 사람의 1시간은 매우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의외로 많은 문제들이 겉으로는 다른 원인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런 시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일어난다.

부부가 싸움을 해도 화가 풀어지는 시간은 서로 다르다. 혼자 다 풀려 시시덕거리면 싸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며느리로 들어온 여자가 시댁 식구들에게 마음을 여는 기간은 각자 다르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조급하다 보니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고 감정의 상처만 내게 된다.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시간도 다르다. 단기간에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지만, 시간의 문제는 크든 적든 반드시 개입이 된다.

그런데 시간의 상대성은 당연히 타이밍의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 헨리의 <경찰관과 찬송가>에서... 차라리 추운 겨울을 감방에서 보내리라 마음먹은 무일푼의 주인공이, 온갖 사고를 치지만 잡히지 않다가 나중에 마음을 돌이켜 교회 앞을 서성이며 바르게 살리라 마음먹었을 때 오해한 경찰이 그를 잡아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많은 고난을 겪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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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어른들과 친척 집이나 먼 곳에 차를 타고 가면, 가도 가도 목적지가 안 나왔다.

"얼마나 더 가야 돼?"

이렇게 물으면 어른들은 꼭 그런다.

"다 왔어~."

쳇, 다 오긴... 그러고도 이삼십 분 더 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어떤 때는 거의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는데 다 왔다고 하다니, 도착해서는 영 속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다 온 줄 아는 아이에게는 남은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른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기준에서 말한 것뿐이다.

시간 개념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다른 굴레에서 벗어나듯 시간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그것을 잘 관찰하여 파도를 타듯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시간을 잘 관리하듯, 감정의 문제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민감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또 자기가 체감하는 시간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느낌을 존중하여 기다려 주고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얼마나 더 가야 돼?"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응~ 길이 막히지만 않으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가 봐야 알아." 하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상대방이 나와 다른 시간의 느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배려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랑이 아닐까.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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