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십이 년 전, 달라스 시내 근방에 위치한 일식 집에서 수셰프(Sous Chef)로 일했었다. 내가 모시고 있었던 헤드셰프(Chef de Cuisine)는 일본 토박이 오나미 상이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상당히 까다롭고 부당하게 처우해 주셨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때려치우려 했던 적이 수차례, 하지만 내야할 등록금과 아파트 비가 눈에 아른거려 이를 악물고 수셰프의 삶을 견뎌냈다.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재산이라고 했던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웠던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칼 쓰는 법이다.

 

아시다시피 사시미를 뜰 때 쓰는 칼은 무척 날카롭다. 날이 시퍼렇게 서있기 때문에 살을 베어도 한참 있어야 베었다는 사실을 알 정도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 위를 흐르듯, 상어 지느러미가 물살을 가르듯, 그렇게 소리없이 살을 베는 사시미 칼은 고도의 집중력과 실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오나미 상에게 칼 쓰는 법을 배울 때마다 "바카야로(ぱがやるう)"라는 소리와 더불어 쿠사리를 수 없이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어디를 가도 칼 못쓴다는 소리는 듣지 않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이상 사시미 칼을 잡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칼을 잡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직업은 다르다 할지라도 역시 칼을 잡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미시 칼보다 더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는 일을 한다. 예전에 썼던 칼이 외날 검이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칼은 양날 검이다. 이전에 사용했던 칼로 생선과 고기의 살점을 떴다면 지금 사용하는 칼로는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목사가 됐다.

오나미 상으로부터 눈물과 콧물이 쏙 빠지도록 쿠사리를 받았던 경험이 일조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란 칼을 잡는 내게는 항상 두려움이 따른다. 사시미 칼을 잘못 사용하면 기껏해야 내 손가락 한, 두 개가 나가지만 말씀의 칼을 잘못 사용하면 내 영혼은 물론 상대방의 영혼까지 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시미 칼을 그릇되게 잡으면 기껏해야 "바카야로(ぱがやるう)" 소리를 듣지만 말씀을 칼을 잘못 잡으면 높은 기준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시간마다 성경책을 열며 "잘못 해석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드렸던 구약학 교수님의 태도와 "강대상에 올라갈 때마다 말씀을 잘못 풀까봐 부들부들 떤다"는 토저의 고백은 내 뇌리속에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부분으로 남게 됐다.

오랜만에 설교와 더불어 성경 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동안 타인을 위해 칼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행여나 잘못 전달하지는 않을까 무척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두려운 만큼 무릎을 꿇게 하시고, 무서운 만큼 말씀을 연구하게 하시는 은혜의 성령님께 의탁드리며 그 날을 준비한다. 아래와 같은 약 3:1의 말씀을 기억하며 말이다.

Μὴ πολλοὶ διδάσκαλοι γίνεσθε, 
너희 중에 많은 자들은 선생이 되면 안된다.

ἀδελφοί μου, 
내 형제들아.

εἰδότες 
너희가 알다시피

ὅτι μεῖζον κρίμα λημψόμεθα 
가르치는 자들은 더 큰/까다로운 기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자격없는 저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출처:이상환 목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