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그는 마태복음 19장 14절에서 그분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러나 마태복음 18장 6절과 누가 복음 17장 2절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 마크 우즈 칼럼니스트는 기독교인의 자녀교육을 주제로 한 글을 게재하고 이 구절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는 "종종 이 구절이 어린이들을 해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전 세대보다 이 시대에는 연약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얼마나 민감한지에 대해 더 세심하게 살핀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서 "어린이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용인되지 않으며 이러한 사례가 나타날 경우 그러한 가족이나 기관은 혐오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구절이 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이 구절에서 '비틀거리다(stumble)'라고 말하며, 그 의미는 자녀가 어떤 잘못이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성명서이다. 가족, 교회,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는 육체, 정신 및 영적으로 자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며 그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녀들은 우리를 그들의 모범으로 삼는다. 자녀들은 보고 듣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
폭력은 괜찮다고 가르치면 폭력적이 된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을 미워해도 된다고 가르치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며 믿음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자란다면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
차세대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보여줄 수있는 놀라운,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이것을 잘못 이해한다면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우리를 두렵게 하며 아이들에게 관여하는 것에 대해 두렵게 만든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항상 올바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분께서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를 더욱 주의깊게 한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더 잘하도록 도전하고, 예수님이 자녀들을 얼마나 보살피시는지,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동안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계시는지 상기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