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 <예수는 역사다>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전달하는 세 가지 메시지를 조명해 보았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생물학적 방증에 대해 살펴본 후, 이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실존인물이자 주인공인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골수 무신론자였다가 아내의 회심을 계기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훗날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목회자가 된 인물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기자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던 그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된 데는, 부활의 증거들과 더불어 아내의 기도와 인내가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영화는 비기독교인 부부 중 한 명이 신앙을 갖게 됐을 때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재현한다. 스트로벨 부부는 많은 내적-외적 갈등과 위기상황을 맞이하면서도, 기존에 서로에게 보내고 있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신앙인과 무신론자 사이에 벌어지는 불화의 시기를 극복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어쩌면 이 부분이 더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다. 비기독교인 가정에서 신앙을 갖게 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기독교인 가정 내에서도 신앙의 내용과 열심의 정도 차이 때문에 심각한 불화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불화는 순전히 그 상황을 맞이하는 개개인의 신앙과 지혜, 그리고 동료 성도들의 지원과 목회자의 상담 및 중재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통념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교회의 지원이 있다 해도 궁극적으로 외로운 투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신자들, 특히 새로 기독교인이 된 이들에게 신앙에 의해 조성되는 가정 내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한 전문적 훈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 훈련은 지식과 심령 두 가지 분야를 망라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는 역사다>에 등장한 스트로벨 부부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혹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섭리에 의해) 이성과 신앙 두 분야가 분업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남편은 신앙의 이성적 근거를 탐구하고, 아내는 생활의 모범을 보이며 진지하게 남편을 설득해 간다. 그리고 그 결과 신앙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갈등 해결하는 결실을 맺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한 개인의 회심은 기본적으로 신앙과 이성, 섭리와 자유의지의 양 측면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성취되는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활과 죽음: 십자가 죽음의 생물학적 증거들
일단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그리스도 부활의 방증으로 잠시 돌아와 보자. 앞서 스트로벨은 신약성서 (필)사본의 원전적 신뢰성, 성서 기록의 정확도, 그리고 부활 목격의 현실성에 대해 전문가들을 상대로 취재를 진행했다. 예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개시된 취재가 갈수록 예수 부활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자, 스트로벨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의학 전문가를 찾아나선다.
그가 네 번째로 확인하려는 사안은 바로 예수의 죽음이 생물학적으로 확실한 것인지 여부이다. 만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진정한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기절 및 가사상태였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부활에 대한 증언이 착각이나 거짓말이었을 가능성 역시 높아지게 된다. 스트로벨은 혹시 이 부분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카고에서 멀리 떨어진 로스앤젤레스를 향한다.
예수가 혹시 십자가형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죽은 듯 기절했던 것은 아닌지 문의하려는 대상으로, 스트로벨은 알렉산더 메서럴(Alexander Metherell) 박사를 선정한다. 영화에 등장한 메서럴 박사는 실존인물로, 당시로서는 비교적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원래 영국 킹스턴 폴리테크닉 대학(Kingston Polytechnic)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브리스톨 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전공을 변경해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University of Miami) 의학대학원에 진학한 뒤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마디로 그는 공학과 의학을 모두 섭렵한 인물이다. 그의 학술연구 주제도 공학과 의학이 접목된 것들(우주공간 의학, 근육학, 그리고 의료방사선학)이 대부분이다.
공학과 의학 전반에 두루 걸친 전문적 지식 덕분에, 그는 예수께 가해진 형벌(채찍형, 십자가형)과 그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과학적인 해명을 제공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소개된 메서럴 박사의 답변은 단정적이고 명쾌하다. 성경 기록을 고려해 본다면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완벽한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복음서에 기록된 세 가지 사안을 주시한다. 첫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채찍형을 받으셨다. 메서럴 박사에 의하면, 로마의 채찍형은 매우 잔혹한 형벌이었다. 고대 로마시대 사용된 형벌용 채찍은 단순히 끈 형태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타격시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채찍 중간 부분에 매듭이 지어진 데다, 무게감을 높여주는 구슬이나 요철 등이 달려 있었다. 이 채찍에 맞은 예수의 등 근육은 가닥가닥 찢어져 제 구실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 당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고 박사는 설명한다.
둘째, 예수는 이처럼 채찍형을 받아 등이 찢어진 채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께서 양쪽에 달린 다른 죄수들보다 일찍 돌아가신 것은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정당화된다.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는 가슴이 강제적으로 펼쳐진 상태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몸을 십자가 쪽으로 당겨 가슴을 수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몸에 힘이 빠지면 이것이 불가능해지고, 결국 숨을 쉴 수 없어 서서히 질식해 죽어가는 것이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들의 주된 사인(死因)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다른 죄수들과 달리 등 근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 이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옆에 달린 다른 죄수들보다 일찍 질식사했다는 것이 메서럴 박사의 분석이다.
셋째, 성서에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는데, 이 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박사에 따르면, 이는 예수의 죽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다.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심낭삼출(pericardial effusion)을 가리킨다. 심낭삼출이란 심장 내부에 체액이 차오르는 증상인데, 죽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즉 옆구리를 찔렀을 때 다량의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예수의 심장이 분명히 활동을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록으로 볼 때 예수가 부활 이전에 완전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메서럴 박사의 해명이다.
▲창에 찔린 예수의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심낭삼출 증상이 이미 시작된 지 오래라는 것, 다시 말해서 완전히 죽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메서럴 박사는 설명한다. |
예수의 기절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주장이다. 스트로벨은 이 가설에 기대를 걸고 의학 전문가를 찾아갔지만, 그의 대답은 더할 나위 없이 확고했다. 이로써 스트로벨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언이 환영이나 착각이나 거짓일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취재를 종결한다.
결국 스트로벨의 조사는 예수의 부활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일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로써 스트로벨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의 가르침 전체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신앙과 결혼: 결혼의 영적 가치에 대한 인지
현 시점부터는 이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에 대해 고찰해 본다. 스트로벨의 취재 활동을 제외하면, 영화에 남은 주제는 기독교인이 된 아내와의 갈등과 그 해소라고 볼 수 있다.
스트로벨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부부간 갈등 장면이 80% 이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특히 아내가 신앙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를 겪은 데 대해 격하게 반발한 일은 이미 2007년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
사실 아내인 레슬리 스트로벨은 기독교인이 된 후 가정생활이나 남편인 리 스트로벨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이전보다 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뒤에서는 기도로 구하고, 앞에서는 신앙을 기반으로 남편을 대하는 데 힘썼다. 이는 영화에서나 다큐멘터리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스트로벨은 아내와 갈등을 빚을 당시 그런 점이 오히려 더 불편하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기독교인이 된 후 아내에게 이전에 없던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이라도 했을텐데, 신앙이라는 거북한 가치를 집안에 들여온 채 이전보다 모범적인 몸가짐을 유지하는 모습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비기독교인 부부 중 한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 발생하는 갈등은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라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이와 유사한 내용을 전달하는 연구가 있어 잠시 소개해 보려 한다. 아네트 마호니(Annette Mahoney)는 오하이오 주 소재 볼링그린 주립대(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심리학 교수로, 종교가 사람의 일상생활, 특히 가족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해 왔다. 그녀는 보통 실천신학(특히 목회상담학) 주제로만 여겨져 온 이 문제를 심리학의 연구주제로 설정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여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2005년 '종교와 부부 간 그리고 부모-자녀 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Religion and Conflict in Marital and Parent-Child Relationship)'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 내용에 따르면, 유대교-기독교 전통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세속적 관점으로 볼 때도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는 자세로 배우자를 대하도록 권고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권면들이다. 한 번 결혼으로 맺어지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배우자에 대한 기본적 존중과 성실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출산과 양육을 중시한다. 부부 간에 성별에 따른 조화로운 가정 내 역할분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가르침들은 귀중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신앙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호니는 그 이유를 기독교인들이 결혼에 부여하는 영적 가치 속에서 찾는다.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결혼이 남편과 아내 두 사람만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결혼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 즉 하나님과 믿는 자 사이에 맺어지는 비밀이 내재돼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비기독교인 부부 중 한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면, 그간 유지되어 왔던 부부 간 관계와 결혼생활의 목적 전체를 새롭게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적 관점으로 볼 때 신앙으로 인해 유발되는 갈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됨을 마호니는 강조한다. 기독교인이 된 배우자가 교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얼마나 많은 물질을 헌신하는지 따지기 이전에, 우선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 변화 그 자체가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신앙과 불화: 가치충돌이 유발하는 갈등과 불화
신앙생활에 그리 유난을 떤 것도 아니고, 신앙을 갖게 된 후 배우자를 더 선대하려 힘쓰는데도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는 경우,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충돌이 아니라 생각과 말의 충돌이라는 것이 마호니의 분석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일단 기독교인은 결혼의 목적을 단순히 개인적 행복이나 세속적인 의무감에 두지 않는다. 신앙적 관점에서, 결혼은 성화(sanctification)의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결혼에는 하나님의 관여와 역사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경우 이중적 심리 갈등이 유발된다. 우선 기독교인이 된 배우자는 여전히 비기독교인인 상대 배우자 때문에 그들의 결혼생활이 하나님이 관여치 않으시는 것이 될까 불안해한다. 이런 불안은 개인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 강화된다. 부부 모두가 신앙을 갖지 않는 한, 자신의 결혼은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신의 신앙에 커다란 결여가 발생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반면 여전히 비기독교인인 배우자 측에서는 기독교인이 된 상대 배우자의 신앙에 대해, 그간 평온했던 결혼생활을 뒤흔드는 불안요소로 인지한다. 부부 사이의 일에 일일이 제3자인 하나님을 관여시키는 태도가 비정상적이라 믿게 된다. 무엇보다 남편이 아내에 대해, 혹은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갖고 있던 심리적 소유감을 박탈당하면서, 그간 경험하지 못한 소외를 느끼게 된다.
이는 결혼생활 자체의 위기로 받아들여지는데, 특히 신앙을 갖게 된 배우자가 그간 탈 없던 결혼생활을 불완전한 것으로 규정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면서 이런 위기감이 고조된다.
마호니가 분석한 것처럼 부부가 서로의 가치관을 두고 불안을 느낀다면, 사소한 의견 차이가 격한 감정적 충돌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해진다. 기독교인이 된 배우자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기보다,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버티기 식의 믿음과 인내로 일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믿음을 가진 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성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신앙을 실천할 방법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역사다>에 등장하는 갈등 장면들 대부분은 바로 이런 심리적 충돌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 남편이 내비치는 적대적 감정에 크게 당황하는 레슬리 스트로벨의 모습에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결혼한 여성 기독교인들이 공감을 표하는 듯하다. 굳이 영화 내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교회 내에서 비슷한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처음 신앙을 갖게 되면서 가족과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목회자와 교회 성도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마호니는 설명한다. 이는 갈등 사례들 간의 질적 차이 때문이다. 이것은 심리학적 사례 연구의 불가피한 난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통계적∙계산적 기법을 통해 다수의 사례를 분석하는 양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면, 기독교인이 당면하는 심리적 갈등의 양상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다. 부부 중 한 쪽이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자주 보이는 행동양상의 변화 같은 것이 일정부분 양적 연구 방법을 통해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크리스틴 커티스(Kristen T. Curtis)와 크리스토퍼 앨리슨(Christopher G. Ellison)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부부 중 한 쪽이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경우,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갈등유발 행동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아내 편에서 보다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경우에는 함께하는 시간의 활용방식에 대해, 혹은 남편 측 가족들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피력하는 것이 자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부각된다. 남편 쪽에서 보다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경우에는 자녀양육 방식의 문제에 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 자주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아내 레슬리 스트로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 리 스트로벨은 아내의 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계속 키워간다. |
그렇지만 이 연구 결과를 분별없이 일반화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각각의 사례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개별적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양적 연구 방법이 가진 이런 한계 때문에 질적 연구 방법(연구 대상의 심층적이고 질적인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질적 연구 방법은 각 사례가 안고 있는 내밀한 요소들을 깊게 파헤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타인의 사례로부터 발견한 지혜를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 근본적인 한계다.
결국 신앙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족 내 갈등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의 분발 밖에는 명료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 실천신학이나 심리학적 연구의 결과다. 다만 갈등 상황에 직면해서 당황해하기보다, 미리 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는 있다.
특히 신앙생활의 외적 실천 여부와 상관없이, 믿음을 갖는 일 그 자체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비기독교인 배우자가 함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지혜롭게 대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와 훈련이 필요할까?
◈신앙과 섭리: 기도와 행함과 의지의 협업
<예수는 역사다>에서 제시하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부부 간 갈등의 일차적 해소 방법은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수시로 심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레슬리 스트로벨은 자신을 신앙으로 이끌어 준 간호사 앨피(Alfie Davis, L. Scott Caldwell 분)를 찾아가 대책을 묻는다. 앨피는 기도하고 인내하며 응답을 기다리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남편의 마음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격려한다.
여기서 앨피는 에스겔 36장의 말씀을 인용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겔 36:26-27)." 하나님께서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무신론의 고집을 포기하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라는 게 앨피가 제시한 믿음의 전망이다.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은 신앙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과 가족의 전도를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할 요소다. 믿고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의 근거조차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약 1:6-7).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닐 수도 있다. 즉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들만 놓고 보면, 거의 대부분 기도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도한 뒤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의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실천이 요청된다.
우선, 갈등의 원인과 양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이라 해서 거창한 학문적 방법을 동원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갈등 상황을 자주 유발하는 구체적 요소들을 되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큰 틀로 보면 신앙을 갖게 된 것이 불화와 갈등의 이유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원인적 요소들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마호니는 다음과 같이 분석을 제시한다. 일단 신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툼 중 어떤 것들은 사실상 믿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일 뿐, 사실상 갈등 발생의 진정한 이유는 애초에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평상시 부부 간 신뢰의 문제, 가정생활의 성실함 문제,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습관의 문제 등이 우선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이런 문제들이 갈등 발생의 주 원인이라면, 신앙으로 인한 가치충돌을 따지기 전에 우선 당사자의 적극적인 반성과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문제적 요소들이 제거된 상태에야 비로소 신앙의 가치충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다. <예수는 역사다>에서 스트로벨 부부의 다툼을 조명하는 장면들을 되짚어 보면, 신앙과 무신론의 가치충돌 외에 다른 것이 문제된 경우는 없다. 레슬리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결혼이 가진 가치에 대하여 근원적인 시각의 변화를 겪은 것 외에 다른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는 일은 없는 것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사안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 속 대사나 다큐멘터리 속 증언을 살펴봐도 레슬리 측의 다른 생활적 결함이 문제시된 일은 없는 듯하다. 스트로벨은 아내가 기독교인이 된 뒤로 더 선하고 헌신적인 성품으로 변화됐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신앙 자체가 비기독교인 배우자의 가치에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다툼이 문제가 된다. 이 경우는 삶의 가치 전체를 변화시키는 신앙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다툼을 회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갈등의 상황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마호니의 연구는 기독교인 배우자가 반드시 주의해야 할 바를 세 가지로 압축해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신앙을 가진 나의 편이라는 생각을 주의해야 한다. 이 생각이 지배적이 되면,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조심성은 사라지고 감정적으로 다툼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내 편'이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갈지 주의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둘째, 갈등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원망하는 태도다. 이는 신앙에 의한 가족 내 갈등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재료로 삼는 일로서, 아예 신앙 자체를 잠식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회피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지원을 구하면서도 어떻게든 갈등을 회피하려는 태도다. 이 경우는 신앙 자체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도란 믿음과 함께, 그 믿음대로 움직이는 실천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신앙으로 인해 유발되는 부부 간 불화의 문제는 가족의 전도라는 책임이 함께 결부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사안보다도 당사자의 노력과 실천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러므로 기도에만 의지하고 갈등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수는 역사다> 속에서도 이런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레슬리는 기도만으로 자기 의무를 다했다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 성실하고 온전한 자세로 가정을 돌아볼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가져온 변화의 장점들을 알리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하나님이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개입함으로써 부부 간의 사랑이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된다는 것을 보이는 데 주력한다. 레슬리는 기독교인이 된 자신에 대해 남편이 가장 서운하게 여기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한 상태로 설득에 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주지해야 할 점이 있다면, 성서와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가르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로벨 부부의 경우를 보면, 아내가 나서기 전에 남편이 먼저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특이한 점이다. 물론 그 의도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훼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런 노력 덕에 스트로벨은 예수의 부활이 방증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점차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예수는 역사다>는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전도에 힘쓰고 있는 이들에게 다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회심의 역사는 강권적으로 실현되기보다, 전도자와 피전도자 사이의 온전한 관계 설정, 말씀의 지식,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전제된 상황에서 피전도자의 자유로운 선택(신앙의 가치를 인정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이 협업을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하게 실현된다.
이처럼 신앙과 이성의 조화,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자유의지의 교호적 작용이 회심의 역사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해준다는 점에서, <예수는 역사다>는 훌륭한 기독교 영화로 평가될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자유의지의 향방이 기도뿐 아니라 전도자(아내)와의 관계 및 말씀의 지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이 작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각자가 신앙 때문에 겪은, 혹은 겪고 있는 가족과의 불화를 돌이켜 보면 좋겠다. 과연 스스로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자신에게 근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가? 나의 신앙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전달해준 메시지를 제대로 수납했다면, 이 같은 질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