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은혜를 저버리고 인간의 의지로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는 사람은 아낌없는 헌신을 하지만 인간의 의지로 삶을 살려는 사람은 헌신에서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목회 중에 저는 수많은 헌신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한분이 계십니다. 박 수정 집사님이십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은 20대 후반에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50여년을 홀로 삼남매를 훌륭하게 키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손주와 함께 제가 섬기는 개척교회에 출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교회 건축을 위해 섬기시겠다고, 작정하신 헌금을 하시겠다고, 실로암 병원에 한쪽 눈을 팔러가셨다가 "목사님! 산사람의 눈은 사지 않는 답니다."라, 저를 찾아와 낙심하며 말씀하시던 연로하신 어르신의 그때의 모습은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헌신의 현장 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세상의 경험이 적은 철부지 어린 목사였고 그분은 인생의 연륜과 신앙의 연륜이 몸에 배일 정도로 아낌없는 헌신을 쏟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때 저는 말로만 배웠던 헌신을 목회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보면서 사역에 더 큰 열정적 헌신을 다짐하며 사역을 감당했던 생각들이 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면, 자발적인 순종의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교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순종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순종을 별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약효가 없는 약은 약이 아니듯, 순종이 없는 은혜는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게 헌신하게 됩니다. 멕시코의 어느 부족은 "믿는다는 말과 순종 한다."는 말을 똑같이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그릇을 귀히 보존하려면 악한 것은 잘라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헌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은혜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헌신과 축복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오병이어의 헌신을 드린 그것이 오천 명이 풍성이 먹고도 남는 기적의 은총을 이루었고, 자기에게 있는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으로 선지자 엘리사를 대접한 사렙다 과부의 희생적인 헌신이 그 가정의 축복으로 임재 하였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개인의 축복과 가정의 축복으로, 교회의 축복과 나라의 축복으로 환원시키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