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장례가 났다. 교회를 나온 지 오래 되지 않은 성도님 아들의 죽음이다. 어머니는 우리 교회 등록할 당시 홀로 살고 계셨다. 그래서 힘겹게 사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장례를 하면서 보니 자녀들이 모두 잘 되어 있었다. 두 아들이 함께 사업을 하고 있었고, 사위도 대기업 수석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고인이 된 성도는 46세로 가족 곁을 떠났다. 고인은 동생과 함께 외국에서 수입해 온 냉동식품을 중간 유통하는 사업을 했었다. 사업이 잘 되는 편이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슬하에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지금껏 착하고 FM으로 살았다. 게다가 매우 가정적으로 싸우지도 않고 살았다.
그러던 중에 위암에 걸려 1년이 넘도록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위암을 앓던 아들이 음식을 먹지 못해 결국 굶어죽다시피 한 것을 가슴 아파했다.
이제 아내는 젊은 나이에 떠난 남편이 짊어질 인생의 무거운 짐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앞으로 두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 어쩌면 고달픈 인생길에 묻혀 남편이 떠난 상실의 아픔이나 외로움도 느낄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아름답고 화려한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아무리 거창하고 멋진 인생을 살았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저항할 수도 없고, 앞당기려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연한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그때가 되면 찬송하면서 하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사명의 길이요,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선취적 누림이다. 어떤 일이 닥치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왕이신 주님의 통치 안에 살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영적인 전쟁을 치열하게 치루는 삶이기도 하다. 그러자니 우리 입에서도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의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 5:7)."
나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우리는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다들 힘들다고 한다. 외롭다고 한다. 속상하단다. 답답하단다. 현실이 생각대로 따라주니까. 원하는 것들이 손아귀에 잘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한숨 쉰다.
그러나 기억할 게 있다. 그런 인생길도 홀로 걷는 길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이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니 외롭지 않다. 두렵지 않다. 지나치게 너무 염려하지 않는다. 주님께 맡긴 인생이니까.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름답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욥은 지혜로운 인생 고백을 한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1-22)."
많이 가졌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적게 가졌다고 기죽을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 마지막 죽음 앞에 서는 그날은 너나 나나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기억할 게 있다. 나는 이 땅에 영원히 발붙이고 살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떠나가야 할 나그네라는 사실을.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반드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다가올 것이다(고후 5:1).
'이 세상 나라'가 다는 아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고 말한다(요일 2:17). '지나가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
땅에 것만 생각하고 바라보고 추구하며 산 인생은 언젠가 통곡할 날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계 18:10)." 화려하고 견고한 성을 보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 무너지는 날은 한 순간에 우르르 하니까.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기억나는가?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한강 성수대교에서 상부 트러스가 무너져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17명이 다치고, 32명이 사망했다. 부실공사와 부실감리, 안전검사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진행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에 완공됐는데, 5년 8개월 만에 붕괴되어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 1995년 6월 29일 퇴근길, 건물 5층부터 지하 3층까지 와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당하는 엄청난 사고였다. 피해액은 2,700억 원에 이른다. 붕괴 원인은 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총체적 부실로 판명되었다.
이제 인생의 부실 공사를 점검해 봐야 한다. 하늘나라 입국에 대한 안전도 검사도 해 봐야 한다. 안심하고 착각하고 있다가 그날에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없다.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했을지라도!
비록 우리가 지금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언정,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하게 살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잃고 산다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 그에게 통곡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