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 나무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요 근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셔서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신다는 노구의 권사님께서 창 밖의 나무들을 가리키며 울먹이셨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눈이 잘 안 보이게 되니까 왜 그렇게 저 나무들이 보고 싶은지..." 권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 눈 가도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권사님, 장 목사에요~"라고 인사를 드리자 그 때서야 제가 누군지 아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권사님은 아들같이 젊은 목사에게 자신을 '미련한 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미련한 것'이, 잘 보이고 잘 들릴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이렇게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게 되니까, 그때서야 당신의 몸도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잘 보일 때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더 감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권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하시고 싶은 찬양이 있으시냐고 여쭸더니 주저없이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찬양은 정말 많이 불러서 가사를 보지 않아도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큰 소리로 이 찬양을 부르는데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권사님이 아주 큰 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 밖에 나무도 잘 보이지 않으시는 권사님이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신 것일까...?"
바울은 고후 4:16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 자신이 푸르를 땐 스스로에게 주목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푸르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시선은 비로소 하나님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연약을 붙들고 계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깨달을 뿐 아니라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로부터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여종에게 길을 열어주십시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며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에겐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바닷물이 그들을 막아 섰고, 뒤에는 세계 최강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기둥과 기둥으로 그들의 길이 되어주셨고 홍해를 가르셔서 바다를 마른 땅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권사님의 길을 그렇게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육신의 눈과 귀는 어두워지셨지만 하나님을 향한 눈과 귀는 더욱 밝아지셔서 하나님이 보이시는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우리 권사님을 따라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전히 푸르르십니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했던 모세의 기도를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