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예배시 하나님과 만나는 최적의 시간이다. 찬양이나 기도로 열정을 가진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삶의 방향과 치유가 없다면 단지 세속화된 유희에 불과하다. 설교는 전인 치유(Holistic Healing)를 통한 영적 성숙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도들의 갈등과 상처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를 균형있게 회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치유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이민 교회 성도들은 깊은 상처 속에 살기에 설교자들은 그들의 컨텍스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설교에서는 설교자의 경험에만 주력하거나 컨텍스트와 텍스트가 단절된 채 성경 내용 주입에만 급급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설교자는 자기만의 설교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는 성도들의 Need에만 초점을 맞추어 인기관리하는 듯한 설교자의 자세도 엿볼 수 있다. 성도들의 기호에만 맞춘 설교는 정작 필요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후퇴케하여 그들을 여전히 영적 갈등과 상처에서 자유할 수 없게 한다. 신앙 서적이나 설교집을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는 있지만, 전인적 치유의 메시지가 되지 못한다면 교인들의 내실 없는 영적 비만과 신앙의 영양실조는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치유"라는 주제로 각종 세미나와 관련된 기관, 단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치유의 근본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오늘날 흔한 치유 방법으로써 상처와 갈등을 공감해주고 그들을 위로하며 정신분석학적인 치료와 자아상 회복 등이 있지만, 신학적인 진단과 하나님의 Need를 통한 치유의 방법과는 동떨어져 있다. 즉 자기 성찰과 이웃에 대한 관심, 죄의 문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태도 등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전인 치유적인 방법의 부재이다.
진정한 전인치유 설교의 구조는 목회상담적인 것과 예언자적인 메시지가 함께 병행되야 한다. 전인적인 건강이 있으므로 한 가지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교자들은 인지해야 한다. 이 사실은 성경과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의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성도들의 영적 성숙과 치유를 위해서는 전인적 설교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