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S가 주최하고 PCUSA 산하 노회들이 후원한 “남가주 한인 목회의 미래를 조명해 보는 한인 목회자 모임”에서 이승현 총장(ITS)가 주제강연을 전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NTS가 주최하고 PCUSA 산하 노회들이 후원한 “남가주 한인 목회의 미래를 조명해 보는 한인 목회자 모임”에서 이승현 총장(ITS)이 주제강연을 전하고 있다.

한인교회에서 이민자의 삶을 언급할 때, 자주 쓰이는 ‘출애굽’ 모델에 대해 구약학자 이승현 총장이 ‘다니엘’ 모델을 제안했다. “지금은 이렇게 광야에서처럼 고생하지만, 반드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겠다”라든지 “나는 비록 광야라도 내 자식은 가나안에서 살게 해 주겠다”는 것이 출애굽 모델이라면 다니엘 모델은 포로의 삶을 선택이자 소명으로 보는 역설이다.

NTS(New Theological Seminary of the West)가 12일 한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연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ITS(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의 이승현 총장은 “21세기 한인 이민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이 컨퍼런스에는 한인 목회자들이 주로 참석했지만 PCUSA(미국장로교) 내 남가주-하와이대회, 그 산하의 로스랜초스 노회, 샌퍼난도 노회, 샌가브리엘 노회 관계자들도 참석해 실시간 통역으로 강의를 들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총장은 “요즘 구약학계에서는 바벨론 포로기에 관심이 많은데 근래 미국교회의 교세 감소나 여러 상황을 보면 지금 이 시대가 마치 포로기와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강의의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포로기의 대표적 인물인 다니엘을 통해 21세기 한인 이민교회의 역할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출애굽 모델이 일부분 맞지만 모든 이민자에게 적용되진 않는다고 했다. 이민생활의 성공을 목표로 쉼 없이 달리는 부모로 인해 자녀들은 부모 없는 자녀처럼 자랐고 부모의 헌신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녀들에겐 죄책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완전한 미국인으로 여겨질 줄 알았던 한인 2세나 3세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거나 인종차별을 겪기도 한다. 이 총장은 “출애굽 모델의 신학적, 신앙적 제한성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민 1.5세인 자신에게는 이민자의 사명에 관해 다니엘서가 매우 유용한 접근법을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포로기는 부정적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기간 혹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기간으로 여겨지곤 했다. 에스더서만 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하나님’이란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좀 더 앞선 시기의 포로인 다니엘서를 보면 포로는 하나님의 선택이며 소명이다. 포로기는 시련과 성공이 교차하는 무대다. 다니엘서 1장을 보면 유다 왕 여호야김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넘겨준 분은 하나님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들 가운데 선택을 받아 당시 세계의 중심에서 바벨론의 교육을 받았고 출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포로 생활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자 그분의 선택이었다. 또 포로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 칙서 이후에도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포로 생활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가운데 그 유명한 다니엘서 10장의 계시를 받는다. 다니엘에게 포로 생활을 소명이었고 하나님께서 부재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시간이었다.

이 총장은 여기서 이민교회의 독특한 소명을 도출했다. “이민은 여러 문화의 경계 사이에서 새로운 무엇이 잉태되는 장소”라면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민족을 위해 간구하는 선지자였듯이 한인교회도 미국을 위한 소명과 민족을 위한 소명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인교회가 후손들이 미국 주류 사회로 진출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해 왔고 미국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도록 영적 교육도 제공해 왔지만, 이제는 이 시대를 바라보며 예언자적 사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우리 자녀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에 온 포로와 같다. 하지만 미국 안에 살면서도 미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한국인이면서도 한국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제3자적 시각, 하나님의 영적 시각으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만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급급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것들로 주위를 둘러보면 소명이 보인다. 한국이 겪은 독재, 가난, 전쟁, 분단은 놀라운 영성과 세계를 품을 선교의 밑거름이 됐다. 이런 아픔은 겪어본 자만이 알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한인교회가 갖는 도전은 고난의 역사를 통해 얻은 영성과 신학을 잊지 않는 데에 있다”고 덧붙였다.

NTS 세미나
(Photo : 기독일보) 12일 패서디나의 웨스틴 호텔에서 7시간에 걸쳐 열린 컨퍼런스에는 한인 목회자는 물론 노회 관계자들도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총장은 달라스빛내리교회 전 담임이자 내러티브 설교로 유명한 이연길 목사의 아들로, 텍사스주립대학교에서 철학,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고 리치몬드 유니온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ITS는 제3세계 신학생들을 양성해 모국으로 파송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1982년 故 김의환 박사가 설립했으며 2006년에 ATS로부터 정회원 인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