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요한 목사
(Photo : 기독일보) 故 서요한 목사의 입관예배가 27일 LA 한인타운 한국장의사에서 엄수됐다.

이 땅에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전도자의 발이 멈추었다. 하나님께서 5월 25일 오후 3시 서요한 목사의 그 다음 발걸음을 천국으로 옮기셨다.

LA 도심 곳곳을 누비며 평생을 노방전도에 헌신했던 서요한 목사(본명 서익석)가 세상을 떠났다. 1957년 1월 1일 전북 김제에서 출생한 고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1980년에 도미했으며 미국에서 베데스다신학대학교, 총신대 미주분교를 졸업하고 예장 합동 서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허리 통증 때문에 기도하다 성령을 받고 병 고침의 기적을 체험한 그는 평생을 전도하는 데에 헌신했다. LA 한인타운을 비롯해 할리우드 등 곳곳을 누비며 한 명 한 명 만나 전도했고 심지어 타국으로 집회를 가더라도 전철역이나 도심에서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 공을 인정받아 남가주목사회로부터 선한 목회자 상을, 남가주교협으로부터 자랑스러운 목회자 상을 받기도 했다.

서요한 목사
(Photo : 기독일보) 故 서요한 목사는 언제 어디를 가든지 빨간색 전도 조끼를 입고 다녔다.

성격이 온화하면서도 시원시원해 동료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한몸에 받았지만 전도할 때만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적힌 빨간 조끼를 고집하는 ‘독한 친구’였다. 그가 이 철 지난 구호를 고집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한 사건 때문이다. 어느 날 천사에게 이끌려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과 지옥의 심판대를 본 그는 전도자의 상급이 얼마나 큰지와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았다고 자주 간증했다.

그는 평생을 전도에 보내며 동시에 배움의 열정도 놓지 않았다. 안수받은 후에도 미주장신대와 ITS 신학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했다. 소천하던 당일인 25일은 그가 UBU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날이기도 하다. 박사 학위를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던 그는 학위 수여식 후 ‘잠깐 쉬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됐을 당시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부르심을 받은 상태였다.

평소 고인을 기억하던 수많은 목회자가 그의 장례를 위해 나섰다. 남가주한인목사회가 전체 장례를 주관했다. 27일 입관예배에서는 엄규서 남가주목사회장이, 28일 발인예배에서는 강신권 남가주교협회장이, 31일 하관예배에서는 이호우 OC교협 수석부회장이 각각 설교했으며 미주연합장로회, 해외한인장로회 서남노회, 칼빈대학교 평생교육원, 미주장신대 총동문회, 풍성한교회, ANC온누리교회, 샬롬기도원, 크리스천교회 제자회 총회 등이 근조 화환을 보내 왔다. 또 남가주호남향우회, 한국문화유산재단, LA북부한인회, 미주한인회총연합회도 화환을 보냈다.

고인은 1990년 김혜정 사모와 결혼해 슬하에 재인, 에스더 두 딸을 두었다. 서 목사의 큰 형은 남가주교협 이사장, LA 한인회장 등을 역임한, 라크레센타 시의원 서영석 장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