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 및 양육 권리를 보다 강화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 9월 앨라배마 대법원은 생모(生母)와 양모(養母)로 구성된 레즈비언 커플이 헤어지며 발생한 자녀 양육 갈등에서 생모의 편을 들어주었으나 연방대법원은 7일 이를 만장일치로 뒤집었다.
앨라배마 주에 거주하는 이 레즈비언 커플은 1995년부터 동거했으며 동거 기간에 한 여성이 세 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당시는 법적으로 동성결혼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부부로서 입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잠시 조지아 주로 가서 공동부모입양을 했다. 영어로 Second Parent Adoption 혹은 Co-parent Adoption이라고 불리는 이 입양은 부부로서의 법적 지위가 없는 동성 커플의 입양을 위한 절차로 미국 내 약 30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보통 입양에서 원래 부모는 입양과 함께 부모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양부모에게 내어주게 돼 있다. 그러나 공동부모입양은 원래 부모가 부모의 권리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부모에게도 친권자의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특징으로,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을 위해 고안된 방식이다.
그런데 이 커플이 2011년 헤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생모인 여성은 자신이 낳은 자녀를 혼자 양육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전 파트너이자 양모인 여성이 자녀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앨라배마 주 법원에 요청했다. 앨라배마 대법원은 지난 9월 조지아 주가 양모에게 공동 친권을 부여한 것이 잘못이라 판단하고 생모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친권을 가진 양모가 자녀를 만나는 기회가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며 앨라배마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연방대법원은 “각 주는 타 주의 판결에 담긴 논리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에 담긴 가치가 잘못됐다 여기더라도 그 판결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나아가 “앨라배마 주는 충분한 신뢰와 신용(full faith and credit)을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 표현은 각 주가 다른 주의 법이나 법적 기록, 재판 절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무에 관한 법적 표현이다.
이 판결로 인해 이제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을 반대하더라도 타 주에서 인정받은 입양이라면 각 주는 이를 받아들여야 하게 됐다. UCLA 법대 내의 윌리엄스 재단에 따르면 미국 내에는 동성 부모를 둔 입양 어린이는 6만5천 명으로 추산된다.
한편, 이번 판결은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 및 양육 권리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미국 내 법 절차에 대한 판결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에서는 동성 커플에 대한 논쟁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으며 오직 앨라배마 주와 조지아 주의 사법적 관할(jurisdiction)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앨라배마 대법원은 공동부모입양을 허락한 조지아 주 수피리어 법원의 법 절차가 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조지아 주 수피리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지아 주 법은 자녀 입양시 원래 부모는 친권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었지만 수피리어 법원은 이 법과 관계 없이 공동부모입양을 허락했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역시 조지아 주 법에 수피리어 법원이 입양에 관해서 최종 판결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에 이런 모순이 극복된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