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은 <칼의 노래>, <난중일기>를 통해 보여줬던 이순신 장군이 단지 역사속의 허구가 아닌 실존적 인물이었다는 것에 대해 재차 확인시켜 줍니다. 명량은 우리들 가슴에 역사적 인물을 현실의 인물로 길러내 주고, 우리를 현재와 미래에서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교훈해 주는 듯 합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뛰어난 장수로서의 검술과 지혜, 그리고 부하들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명량해전에서는 12척의 배와 두려움에 매여 있는 패졸들과도 같은 군졸들을 이끌고 330척의 적선과 맞서 싸우는 전설적 영웅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웅 이순신이라 불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와 같은 전승의 기록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불패의 영웅에게도 죽음에 대한 한없는 두려움이 늘 마음 바닦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홀로 두려움과 죽음에 맞서 고민하는 흔적들은 그가 적들의 주검을 보면서도 계속 되고, 두려움에 쌓여 탈영하는 군졸들과 승산 없는 싸움을 회피하려고 애쓰는 여하 장수들을 통해서도 발견됩니다. 어찌보면 그 모습들이 그의 내면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서 자신의 죽음을 맞아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머님에 대한 불효의 무거운 마음, 아들 면의 상처, 임금과 공신들에 대한 배신감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자신에게 부여된 최전선의 수장에 걸맞게 철저히 조절해 가는 모습은 마치 자신이 죽어야 할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처럼 다가옵니다. 연민조차 억누르고 법의 정도를 걸으려는 모습, 아비요 남자요 한 인간이면서 그것을 조절하며 한 국가의 최후 방어선에 의연히 서려는 모습들이 이순신 장군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고상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을 때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웅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용어의 제한성 때문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복종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셨던 죽음 앞에서의 절규는 예수님께서 단지 참 신일 뿐 아니라 참 인간임을 보여 줍니다. ‘참 인간, 참 사람’ 너무 아름답게 다가오는 표현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 앞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의 높은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복종시키시는 예수님의 ‘참 사람다움’은 바로 우리의 됨됨이 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