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으레 들뜨기 마련이다. 자랑스럽게 이뤄 낸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후회되는 지난 일들을 빨리 잊고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의 워밍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연말의 정점을 찍는 것은 크리스마스이다. 한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과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한 가족의 미안함을 감사로 표현하고,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산타클로스의 방문을 기다리며 긴 겨울 밤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가족, 연인과 함께 특별한 기억을 남기기를 원한다. 그 특별함을 위해 좋은 것을 사고, 좋은 곳에 가려니 분에 넘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올 해는 작년보다 더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 부담감은 갈수록 더 커진다.
그렇지만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일년 중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렇고 그런 어느 날, 한 아기가 태어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알에서 나온 것도, 시저처럼 어머니의 뱃속을 가르고 기적적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당시 모든 아기들이 그랬듯이,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이 땅에 왔다.
사실, 크리스마스의 배경에는 영웅 탄생의 모든 서사 구조가 다 담겨 있다. 우주의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내는 빛나는 별,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들의 합창, 해 뜨는 곳에서 찾아온 신비한 현자들의 경배,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궁정의 암투까지 그야 말로 한 장의 그림 안에 온 세상이 모두 담겨있는 것과 같은 웅장함에 전율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의 카메라가 평범한 한 여인의 품 안에 있는 아기에게 초점을 맞추는 순간, 그 장엄한 서사시는 아웃포커싱이 되어 다 날아간다. 오직 한 아기의 새근새근한 숨소리만 들릴 뿐 세상의 요란함은 구유 안의 아기 앞에 소리 죽여 경배한다. 우주적인 특별함이 지극히 평범한 아기 앞에 무릎 꿇는 순간이다.
그 아기가 이 땅에 오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특별함을 추구했다.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을 신의 아들로 숭배할 것을 강요했으며, 누구도 가져 보지 못한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피를 강같이 흘렸다. 이생의 영광이 내세에세도 유지되기를 염원하며 무덤마저도 태산 같이 쌓아 올렸다. 혹여라도 저승 가는 길 노잣돈이 모자랄까 봐 온갖 진귀한 금은보화를 땅속에 묻었다.
그 후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 세상이 열두 번도 더 바뀌었어도 인간의 그 특별함에 대한 욕망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확대 되었다. 이전 역사의 특별함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꿈이라도 꿀 수 없는 것이었으며, 행여 그 특별함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갈라치면 역적이 되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만의 특별함을 추구할 수 있는 평등의 길이 열렸다. 몇몇 사람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해 지는 길이 열리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모두가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다. 적자생존의 동물의 법칙이 사람 사는 세상의 법이 되었다. 그 결과 행복의 파랑새는 날아가고 만인의 고통만이 남았다. 사실 죄의 기원도 신과 같이 되기를 원했던 특별함에 대한 욕망의 결과가 아니던가?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온 이 아기는 그 특별함에 대한 인간의 모든 욕망을 다 내려 놓았다. 그는 천상의 세계에서 내려와 스스로 인간이 되는 길을 택했다. 제우스의 번개 창 대신 작은 손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부여잡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적 폭력을 포기했다. 특별함의 욕망을 포기한 순간 그 아기에게는 죄의 저주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 평범함이 사람들을 특별함의 욕망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 아기는 높아지는 길이 아닌 낮아 지는 길이 평안과 내세의 축복을 가져다 준다고 선포하였다. 높아 지려는 욕망의 불꽃은 결국 자신마저 불태워 허무한 잿가루만 남기지만, 낮아지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행복의 파랑새는 저 너머 어딘가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 있다. 이번에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특별함의 욕망에서 놓여나 그 아기가 만들어 냈던 그날처럼 평범한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평범한 크리스마스가 그 어느 날의 특별함 보다 빛나는 기억의 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