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성 버나드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318쪽 | 12,000원

기독교 신비주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영성가 버나드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1090년 프랑스 디용(Dijon) 근교 폰테인(Fontaines)에 있는 부르고뉴 지방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1112년, 그는 30명 이상의 동료들을 이끌고 시토(Citeaux)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1115년 클레르보(Clairvaux)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곳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는 생전에 72개소에 달하는 수도원들을 전 유럽에 창설하였고, 시토회에 속한 수도원들은 500여 곳에 이르렀다.

학문과 품성이 뛰어났던 그는 곧이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했다. 제국의 왕들과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여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신앙의 옹호자, 분열의 치료자, 수도원의 개혁자, 성서학자, 신학자이며 웅변적인 설교자, 이단을 척결하는 설교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열정적으로 하나님과 영혼의 사랑을 나누라

<하나님의 사랑>은 버나드의 대표적 저술들 중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뽑아 특별히 평신도들을 위해 편집한 것이다. 즉, 버나드의 저작들의 정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한 그의 저작은 중세 신비주의를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경 말씀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아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앙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의 영성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다. 그의 글은 변화에 이르는 달콤한 합일(合一)의 기쁨을 노래한다. 그로 인해 버나드는 '꿀벌처럼 감미로운 박사(Doctor Mellifluus)'라는 칭호를 얻는다.

버나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사모하고 진리를 묵상하며 자비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드러내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은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나드는 말하기를, "경건한 가운데 천상의 마음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인간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은 하늘나라에서 완전히 회복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잠시나마 그 맛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명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에 따라 저 세상의 맛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자유를 저 세상에 가기 전에 이 세상에서 잠시나마 경험해 보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이고 작은 분량이며 잠깐의 시간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슬픔에서의 자유, 혹은 기쁨의 자유를 잠시 누리는 것이다.

버나드에 따르면, 영적 생활에는 3단계가 있다. 초보자의 영혼과 성장 과정의 영혼과 성숙자의 영혼은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단계는 동물적 단계다. 동물성은 감각에 의해 지배받는 삶의 형태다. 따라서 행복은 육체적 쾌락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이 동물적 상태는 거룩한 단순성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제2단계는 이성적 단계다. 영을 부여받은 인간은 그의 온 마음과 영혼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선하고 이성적으로 된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선한 영을 가진다. 이성적인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

제3단계는 영적 단계다. 사람의 생각 대상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사물이 될 때, 의지는 그 자체가 사랑이 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성령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기도와 묵상 혹은 연구를 위해 힘을 베푸신다. 이 단계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충만하신 감미로움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버나드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은 오직 마음을 청결하게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경험이다.

버나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 그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척도가 있는데, 그것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충분히 사랑의 원인이 되시며, 이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으므로 마땅히 사랑받아야 한다.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의 응답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버나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빈곤과 단순함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버나드의 불후의 명성은 그가 경건 가운데서 열정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눈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는 세속적인 명예와 위로를 경멸했고, 이기심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난하게 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이었다.

버나드의 불후의 명성은 그가 경건 가운데서 열정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눈 사람이라는 데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버나드는 치열한 금욕주의로 인해 죽을 때까지 가장 엄격한 자아부정을 실천하였다. '마지막 교부'라고도 불리는 그의 글은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