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6월 25일 남침 전쟁이다.
6월이 오면 주마등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그때 그 일들이 필자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는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개인 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너무 큰 상처를 남긴 전쟁이라 좀처럼 그 상처가 싸매지지도 않고 잊혀지지 않는다 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낸 전쟁이다.
6.25 후 세대들은 6.25 전쟁이 어떠했는지 잘 모른다.그래서 공산주의에 대해 생각도 다르고 사상도 다를 수 있다 나아가 국가관도 전후 세대가 다르게 발전해 간다 이것은 공산주의를 바로 경험 하지 못한 차이일 것이다. 우리 경험에 의하면 공산주의는 무신론 주의요 잔인 무도하다 기독교의 자비와 사랑과는 원수지간이다 .북한 공산주의는 지금도 기독교인을 살해 하고 있다. 기독교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만 공산주의는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주의이다 한 예로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남침 전쟁에 가담 했을 때 인해 전술을 사용 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전쟁 사진을 보관 하고 있다. 아군의 총알이 다 할 때까지 중공군을 총알받이로 시체 위에 시체가 덮이도록 계속 총알받이로 내 모는 무자비한 전쟁술이다. 공산주의에 인명경시풍조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 같은 줄 안다
배급을 주지 않아 풀만 먹고 인육까지 먹다가 300만 명이나 아사 하는데" 허리띠를 동여라 고난의 행군이다"가 웬 말인가 잔인 무도한 공산주의와 어떤 협상인들 가능 하겠는가?
필자는 초등 학생 때 6.25 전쟁을 겪었다 6월 25일이 주일이었다 고향이 옹진 반도인 관계로 제일 먼저 대포 소리를 들었다 아직 캄캄한 새벽 시간인데 김일성이 탱크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기습 처 내려오는 소리였다 고향이 38선 이남이라 공산주의 정치는 받지 않았었다 빨개가 쳐 들어 온다는 말에 동리 사람들이 피난을 가다가 길가 집으로 모두 들어 갔다 이때 인민군도 따라 들어와 연설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인민을 위한 인민 군대로써 여러분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평안히 살도록 도와 주러 왔으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 가라요" 인민군 장교의 말을 듣고 돌아 가려고 많은 사람이 나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신발이 벗겨 졌는지 허리를 굽혔는데 그 사람을 인민을 위한 인민군 장교가 권총을 들어 머리를 쏘아 말 한마디 못하고 즉사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든지 64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사람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 입이 찢겨 죽기까지 싫었던 공산주의 그 앞잡이 그 간첩 빨갱이들이 서울과 전국 대한민국 자유의 그늘 속에서 이승복 어린이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6.25는 남침이 아니요 북침이었다고 어린 학생들에게 거짓 가르치는 전교조 선생들이나 요즘 불려지는 좌경화 그들이다.
2006년 11월 18일 자 조선일보 A5 정치면에 실린 기사다 장관 청문회 질의 답변에 "6.25는 남침인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 하기를 "규정 해서 말 하는 것 적절치 않다"고 했고 "북한 인권 유린과 불법 행위 증거 없다" 한 사람이 2014년 6.4지방 선거에 교육감이 되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북한의 인권 유린 증거 이 지구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증거 없다가 웬 말인가 이것은 고의였다 어떻게 옳은 역사 교육을 담당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대적은 항상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사상 검정이 없는 인도자는 백성들이 불안 하다 탈북 망명한 동포들은 화를 내기까지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