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사랑의 쌀 나눔운동을 두고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와 미주성시화운동본부 간에 갈등이 격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총5회를 맞이한 사랑의 쌀은 남가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타 종교계와 한인사회가 함께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사다. 이 행사는 지난 4년간은 성시화본부가 주관했으며 2013년 처음으로 남가주교협이 주관했다.

“남가주 교계가 연합해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 사역을 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지만 어느 단체가 주관할 것인가 문제는 거의 매년 논쟁의 도마에 오르곤 했다. 올해 양 단체의 갈등도 사실 이런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해가 쉽다.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의 주도권 갈등

이 행사는 2009년 남가주교협과 LA총영사관이 주최하고 성시화본부가 주관한 가운데 중앙일보, 한국일보도 참여해 시작됐다. 기독교계에서는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가 이 운동을 함께 시작했지만 모금과 쌀 배부, 재정 운용을 성시화본부가 주도하면서 이 행사는 사실상 성시화본부의 사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다 5회째 행사를 앞두고 남가주교협이 이 행사를 주관하겠다고 나섰다. 남가주교협 측은 “처음부터 우리가 시작한 운동이며 이 운동은 교계를 대표하는 남가주교협이 주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성시화본부 측은 회의를 통해 이를 수용했다. 당시 성시화본부의 이성우 상임본부장은 “4년 동안 해 오던 일을 타 단체에 넘겨 준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교계의 연합을 위해 양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시화본부 측의 이 결정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남가주 교계에 보기 드문 훌륭한 일로 큰 박수를 받았다.

2013 사랑의 쌀 기자회견
(Photo : 기독일보) 박효우 남가주교협 회장이 사랑의 쌀 운동과 관련된 결산 내역을 공개했다.

2013년 결산 공고로 재정투명성 의혹 발생

2013 사랑의 쌀 기자회견
2013 사랑의 쌀 결산공고 광고. 이 광고에는 총수입과 쌀 배부 수만 나와 있을 뿐 총 지출과 잔액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3년 사랑의 쌀은 큰 잡음 없이 치러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의 보도에 양 단체 간에 해묵은 감정이 폭발했다. 남가주교협이 공동주최한 단체들과 상의 없이 2월 25일 각 언론사를 통해 결산공고를 광고한 일 때문이다. 그동안 결산공고는 행사에 관련된 모든 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자체 평가를 하고 그 후에 나가는 것이 관례였는데 남가주교협이 단독으로 이를 발표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타 단체 관계자들은 중앙일보에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2월 26일자 <’사랑의 쌀’ 결산공고 논란> 보도), “절차가 잘못됐다. 다시 해야 한다”(3월 13일자 <”단독 결산공고 광고로 논란 사랑의 쌀 관련 해명하겠다”> 보도)고 반발했다. OC교협은 “추가로 거둔 8000달러도 남았는데 어떻게 주관단체 단독으로 결산공고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2월 27일자 <”결산보고도 없이 공고라니…” 참여단체들 반발> 보도)고 한 것으로 보도됐다.

중앙일보의 보도만을 놓고 볼 때, 참여단체들이 비판한 것은 단순히 절차상의 문제다. 함께 행사를 치렀으니 함께 평가하고 공고했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런데 그동안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 간에 있던 해묵은 갈등이 여기서 터지고야 만 것이다. 거기다 교계가 하는 행사 마다 필수적으로 등장하던 재정 불투명 의혹까지 겹치면서 이 기사가 “남가주교협이 무슨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읽혀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절차가 잘못됐다”는 기사의 텍스트가 양 단체간 갈등과 그동안 교계가 보여준 재정 불투명성이라는 컨텍스트를 만나니 성시화본부가 남가주교협을 비리 집단으로 매도한 것처럼 보인 셈이다.

게다가 이 결산공고가 수입 75,293.53달러, 쌀 9066포 배부로만 나오고 잔액은 얼마인지, 재정이 어떤 용도로 사용이 되었는지가 나오지 않아 의혹이 더했다. 또 이 공고 당시 남가주교협 회장 등 주요임원진은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차 한국을 방문한 상황이라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안 그래도 말 많은 교계에 기름 끼얹고 불 지른 꼴이 되어 버렸다.

기자회견에서 양측 공방

3월 19일 남가주교협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효우 남가주교협 회장은 시종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먼저 “제가 이 일을 처음 하다 보니 잘 몰라서 그렇게 했다(결산공고를 남가주교협이 단독으로 한 일을 지칭). 2월이 가기 전에 급히 재정을 공개하려 하다 보니 그런 실수가 발생했다. 죄송하다”고 말한 뒤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도적질을 했다면 무서운 범죄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기자회견은 박효우 남가주교협 회장와 이성우 성시화본부 상임본부장의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다. 박효우 회장은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가 그동안의 수입, 지출 내역을 전부 공개하자”고 요구했다. 이성우 상임본부장이 “매년 행사를 마칠 때마다 이 내용을 공개해 왔다”고 말하자 박 회장은 “영수증 하나까지 전부 회계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검토하자”고 공세를 높였다. 박 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남가주교협에 앞서 4년간 성시화본부가 이 일을 함에 있어서 각종 재정이 불투명하게 사용되거나 부풀려 지출됐다는 것이다. 쌀 한 포대의 구매 비용이 운송비용을 포함해 7달러 50센트라고 했다가 후에 5달러 70센트라고 구두 상으로 정정한 일이나, 쌀의 구매 비용에 운송비용이 포함되었다고 했다가 연휴로 인해 운송비용이 증가했다고 말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을 불투명하게 사용한 쪽은 남가주교협이 아니라 성시화본부라는 주장이다.

또 그동안 성시화본부가 사랑의 쌀 모금액 중 일부를 다른 용도에 사용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2013년 사랑의 쌀 행사 출범식을 총영사관 주최로 JJ그랜드호텔에서 열기로 했다가 이 만찬 비용을 성금에서 지불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그 예다. 박 회장은 “사랑의 쌀을 나누라고 낸 성금으로 총영사 만찬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고 반발한 후, 이 행사가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2013 사랑의 쌀 기자회견 이성우 상임본부장
(Photo : 기독일보) 이성우 상임본부장이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성우 상임본부장은 “과거에는 총영사 관저에서 출범식을 했기에 이 비용을 총영사관이 부담했으나 올해는 총영사 관저가 리모델링을 하느라 예산이 넉넉치 못했다. 또 한인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취지에서 호텔에서 행사를 하기로 했고 이는 결국 총영사관 내의 행사가 아니기에 총영사관에서 재정을 부담할 명분이 없었다. 따라서 이를 성금에서 지불하자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지출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답했다.

남가주교협 측은 성시화본부 측 인사들이 이 행사의 주도권을 잃은 후, 의도적으로 모금에 참여하지 않아 행사에 차질을 빚게 하고 쌀 포대에 붙이는 스티커의 디자인도 지적재산권을 운운하며 제공하지 않았으며 4회에 걸친 행사 관련 자료, 특히 재정 관련 자료를 이관해 주지 않아 불편함을 겪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남가주교협은 “앞으로 이 행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남가주 한인사회 앞에 명명백백하게 모든 재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는 3월 31일까지 언론에 지난 5년 간의 모든 수입 지출 내역을 영수증까지 첨부해 공개하기로 했다.

2013 사랑의 쌀 기자회견
(Photo : 기독일보) 사랑의 쌀 결산 내역. 남가주교협은 이날 수입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사랑의 쌀 결산 내역은 총수입 75,293.53달러에 쌀 구매 비용 48,439.50달러, 활동비 5,500달러, 광고비 9,379달러, 행정비 4,093.18달러 등 총지출이 6만7511.68달러였고 현재 잔액은 7881.85달러를 기록했다.

취재를 마치며

남가주 한인교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언성을 높이며 갈등하는 일은 보기에 참 언짢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소위 갈등 관계에 놓인 남가주교협과 성시화본부의 대표급 인물이 한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은 한인교계 역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그동안 다수의 한인교계 행사에서 재정투명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서로 뒤에서 비난하고 공격했지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얼굴을 맞댄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OC교협, 남가주목사회 등의 주요인사들까지 모두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 관계를 해명하고 “한인 동포의 헌금을 한 푼도 허튼 데에 쓸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준 것은 오히려 큰 박수를 칠 만하다.

이제 양 단체는 그동안 한인교계는 물론 한인사회 행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재정 공개에 합의했다. 이로 인해 약간의 추가적 잡음이 예상될 뿐 아니라 양쪽 모두 교계와 사회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재정 내역을 확실히 짚고 넘어 가겠다는 태도는 향후 사랑의 쌀 운동과 각종 연합 행사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제 그냥 덮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