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담임목사보다 교회 이름이 더 부각되는 교회가 과연 몇 곳이나 될까.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리더십 교체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그 과정에서 원로-후임목사 간 갈등을 자주 경험한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담임목사의 과도한 영향력' 탓이라는 분석이 일반화되면서, 그 만큼 교회의 개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름을 대면 흔히 알 만한 교회들 중, 상대적으로 현 담임·원로목사의 비중이 큰 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지구촌교회, 광림교회, 수영로교회, 소망교회, 경동교회, 남서울은혜교회, 수원중앙침례교회, 한신교회(분당·서울), 명성교회, 분당우리교회, 높은뜻교회(높은뜻숭의교회 분립 이후 생긴 교회들), 연세중앙교회, 금란교회 등이다. 교회를 개척했거나 괄목할 만한 부흥을 가져온 목회자들이 원로 혹은 현직 담임목사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여전히 조용기 목사로 기억되고 있고, 지구촌교회 역시 이동원 목사의 향이 짙다. 특히 높은뜻숭의교회의 분립으로 탄생한 일명 '높은뜻교회'들도, 내부적으론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밖에서 볼 때는 '김동호 목사'라는 이름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밖에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경동교회(故 강원용 목사),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 한신교회(故 이중표 목사) 등도 전·현직 담임목사들의 이름이 소위 '브랜드화(化)'된 교회들이다.
특색 있는 사역과 역할로 목회자보다 '교회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곳들은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삼일교회(담임 송태근 목사),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서울광염교회(담임 조현삼 목사) 정도다.
사랑의교회는 故 옥한흠 목사 시절부터 '제자훈련'으로 유명해진 교회다. 물론 그런 제자훈련을 지역교회 목회 현장에 과감하게 도입한 옥한흠 목사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교회의 이름에서 사역의 내용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교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삼일교회는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가 담임으로 있을 당시 '전병욱'이라는 이름과 '청년교회'라는 특징이 공존했던, 매우 독특한 교회였다. 이후 송태근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의 색깔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삼일교회=청년교회'라는 등식은 유효하다.
온누리교회는 故 하용조 목사가 생존했을 때도 '경배와찬양' '문화' '멀티사이트' '연예인' 등의 키워드로 기억되던 교회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누군지는 몰라도 온누리교회는 안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서울광염교회는 일명 '감자탕교회'로 유명하다. 이 교회 한 교인이 과거 펴낸 책 「감자탕교회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 평신도들의 활발한 교회 참여와 고정관념을 깬 사역들로 지금도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목회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교회일수록 '목회 계승'이나 이와 맞물린 '사역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해당 목회자가 일선에서 물러나면 자연히 그가 교회 내에서 차지했던 비중 만큼 공백이 생기고, 후임이 오더라도 그가 이 공백을 메우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교인들이 마치 '관성'처럼 전임 목회자를 그리워할 가능성이 큰데, 이것이 지나칠 경우 자칫 전·후임 사이 갈등은 물론 교회 내홍까지 생길 수 있다. 은퇴 전이라도 목회자가 가진 막강한 권한은 그를 부정과 비리에 빠뜨릴 위험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독립교회'를 표방한 갈보리교회도 최근 청빙 문제로 잡음이 일자 교인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교회측은 헌법 개정 취지에 대해 "목회자 개인의 인격과 양심·자질에 의존하는 독립교회는, 자율성 확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회나 제직회 등의 부재로 견제 기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며 "소수가 교회의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독립교회의 정신은 살리되 부작용은 보완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목회자 개인보다 '교회성(性)'을 더 살리는 것이, 리더십 교체로 일종의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그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배본철 교수(성결대 역사신학, 인천 복된교회 협동목사)는 "시대마다 이상적 교회론에 입각한 교회 모델들이 조금씩 나오곤 했었다. 이런 교회를 일궈가는 것이 많은 목회자들의 이상일 것"이라며 "가령 대형교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교인들 간 교제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성'을 추구한 교회들이 생기기도 했었다. 이런 시도들은 최근 대형교회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자주 비치면서, 대형교회들만으로는 교회가 가진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난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젊은 목회자나 신학생, 즉 목회자 후보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과거 이들이 대형교회 목회를 하나의 꿈이나 지향점으로 삼았다면, 지금은 이른바 '강소교회'를 추구하며, 비록 작지만 특색있고 교회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목회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며 "그 만큼 목회자 개인보다 교회의 성격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교회의 본질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교회의 개성을 더 살리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라남도 완도 성광교회(담임 정우겸 목사)의 평신도위원회 수는 무려 793개, 이들 위원회의 활동을 꼼꼼히 기록한 주일예배 주보는 쪽 수만도 48쪽에 이른다. 이 교회는 또 12년 연속으로 세례자 수 60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교회 담임 정우겸 목사는 "신학생 시절 성경을 배우면서 사도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신앙을 전수받은 소위 평신도들 역시 복음 전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았다"며 "지금의 교회에도 평신도들로 구성된 리딩그룹이 필요하다. 이제 목사 혼자, 혹은 당회원 몇 명이 교회를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