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성 총장(왼쪽)이 몰트만 교수에게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후 악수하고 있다. ⓒ서울신대 제공
유석성 총장(왼쪽)이 몰트만 교수에게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후 악수하고 있다. ⓒ서울신대 제공

"언제부턴가 한국과 한국교회는 제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는 대학에서 저의 모든 삶과 신학의 정수를 모두 전해주고 싶습니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가 2일 오전 부천에 위치한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로부터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신대측은 "몰트만 박사는 '희망의 신학'을 통해 세계대전의 충격에 빠져 있던 서양사회에 새로운 기독교적 '희망'을 제시했고, 신학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왕성한 활동으로 신학 발전에 기여해 학위를 수여하게 됐다"며 "학위 수여를 계기로 독일 명문 튀빙겐대와 자매결연을 맺어 다양한 협력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은 또 후학 양성을 위해 몰트만 박사를 9월 1일자로 석좌교수에 위촉하기도 했다.

박영환 교무처장 사회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유석성 총장은 수여사를 통해 "몰트만 박사님은 세계 신학계에 공헌하셨을 뿐 아니라, 한국의 신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시고 한국의 문제를 신학화하셨다"며 "특히 우리 대학이 독일에 진출할 수 있도록 튀빙겐대와의 교류를 주선하셨는데, 우리가 세계적 명문대학을 만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총장은 또 "몰트만 박사님의 자서전 제목이 시편을 인용한 '더 넓은 곳'인데, 오늘을 기점으로 서울신대와 성결교회, 한국 신학계가 한층 더 넓고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개인적으로는 스승님께 총장으로서 명예박사 학위를 드리게 돼 한없는 영광"이라고 밝혔다.

박용규 이사장은 "오늘 명예박사 수여는 서울신대가 세계적인 기독교 명문대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라 생각한다"며 "'숨쉬는 한 희망'이라는 박사님 말씀은 우리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하고 있는데,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세계 신학계와 한국교회, 서울신대를 위해 큰 공헌을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각계 인사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서울신대 명예신학박사 대표로 축사를 전한 김선도 감독은 "세계적인 신학자인 몰트만 박사님에게 서울신대가 한국 최초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게 돼 한국 신학계의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1960년대에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박사님의 '희망의 신학'이 클래스마다 회자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 오늘 이렇게 박사님과 명예박사로 동문이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1970년대부터 40여년간 몰트만 박사와 교제해 왔던 서광선 박사는 "몰트만 박사님과 함께 신학했던 친구이자 동지, 후배로서 명예박사 수여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몰트만 박사님은 1970년대 군사독재 시대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온 한국 기독교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고, 특히 민중신학자들을 격려해 주신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신대 김명용 총장은 "몰트만 박사님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분보다 오히려 학위를 드리는 학교가 더 명예스럽게 되는 그런 분으로, 생존 신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전 세계 신학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 신학계의 단 한 분의 스승이시다"며 "박사님은 세계 신학을 바꾸셨을 뿐 아니라, 20세기 후반 전세계의 민주화운동이나 인종차별 저항운동, 동서냉전 종식 등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신 위대한 신학자"라고 강조했다.

몰트만 박사가 학생들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서울신대 제공
몰트만 박사가 학생들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서울신대 제공

몰트만 교수는 박종화 목사(경동교회)의 통역으로 전한 답사를 통해 "1975년부터 한국에 오기 시작해 자주 들렀고, 한국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독일로 제게 공부하러 와서 학위를 받아가셨다"며 "오늘 명예 신학박사 학위는 그에 대한 보답이 아닌가 하면서, 존경하는 총장님과 여러 교수·학생 여러분들 앞에서 감사와 겸손의 마음으로 명예학위를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선교하는 교회 등을 배웠는데, 이제 다시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다"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전 세계를 위해 곳곳에서 수많은 선교적·사회적 책임을 지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는 명예박사 수여식 후 기념강연을 전하기도 했다.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생활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갖고 회심한 후 전공을 과학에서 신학으로 바꿨다. 그는 '희망의 신학'을 주창하며 20세기 후반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열면서, 칼 바르트 이후 현대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학자이다. 몰트만 박사는 미국·영국·스웨덴 등 8개국 유명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몰트만 박사는 19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측면 지원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석성·이신건 교수(서울신대), 김균진 교수(연세대) 등 10여명의 한국 제자들이 모두 유명한 신학자가 됐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도 막역한 사이로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제자(유석성 총장)가 재직하는 학교에서 스승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점도 이채롭다.

서울신대측은 "몰트만 박사가 서울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튀빙겐대와의 자매결연을 추진하는 것은, 이제 학교가 명실상부한 세계적 신학대학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라며 "1백년 전만 해도 한국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성장을 거듭한 모습과 그 저변에 신학이 있었음을 평가한 것"이라고 전했다.

102년 전통의 서울신대는 '사랑과 정의, 평화의 신학'을 추구하는 신학계의 강소(强小) 대학으로, 독일 출신 교수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또 일본 동지사대학에 국비장학생을 보내는 등 이제는 세계 유명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대학으로 비상하고 있다.